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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Oct 12. 2021

내가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 이유

떠나는 여행이 아닌 머무는 여행

언제부터인가 나는 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첫 혼자만의 해외여행이 런던에서 2주간이었으니, 처음부터 긴 여행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긴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이유는 처음에는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힘들게 매일의 시간을 투자하며 번 돈으로 가는 여행. 먼 곳으로 많은 돈을 사용해서 가는만큼 소위 '뽕을 뽑고 싶다.'라는 심리가 작용했다. 그런데 오래 머무를 수록 마치 '여행지'가 아닌 '사는 곳'으로 그 장소가 변하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의 일상생활을 간접 경험하는 장소. 여행자에게 유명한 곳이 아닌 현지인들이 들를 만한 소소한 곳을 발품 팔아 찾아다니고 현지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장소에서 현지인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사용하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 나라나 도시에 오래동안 머무는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여행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익숙한 장소를 떠나는 것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익숙한 장소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런 여행방식은 코로나 판데믹 시기에 강점으로 작용했다.

코로나의 유행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장소를 돌아다닐 수 없을 뿐더러, 교통편과 입국에 제한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6개월 간의 생활을 마치고, 에스토니아에서 3개월 간의 생활을 시작했다.



머무는 여행에 최적화된 숙박시설은 단연 에어비앤비이다.

현지인의 취향으로 꾸며놓은 현지인들이 사는 집. 그 집을 빌려서 생활하는 것.

호텔에서 맛있는 조식을 먹고, 최고의 침구를 사용하고, 멋진 뷰를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일 수 있지만, 최대한 현지인의 시선을 빌려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을 추구하는 나는 에어비앤비만큼 가성비 좋게 현지인들의 감성을 느끼며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 판데믹 때문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역문제도 있고, 갑자기 이런 상황에 아시아에서 한 동양 여자가 뜬금없이 북유럽에서 생활하겠다니. 그런데 생각보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오픈마인드였다. 에스토니아에서의 3개월 간, 나는 3개의 다른 에어비앤비에서 생활했다.


사람 사는 집이야 어디든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나라마다 건물도 다르고 내부 인테리어도 다르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머물렀던 집은 두 집 다 탈린의 올드타운 안에 위치했다. 탈린의 올드타운은 말 그대로 13세기 무렵의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네인데, 처음 머물렀던 집은 18세기, 두 번째로 머물렀던 집은 15세기에 지어졌던 집이어서 마치 한옥스테이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생활했다.

에스토니아에서 두 번재로 큰 도시인 타르투에서 머물렀던 집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에스토니아의 현대식 건물은 마치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와 같은 느낌이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무언가 구소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묘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했다.


탈린에서의 첫 번째 에어비앤비에서 제일 좋아했던 공간. 현관문으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옆 작은 공간에 놓인 빨간 소파와 편안한 느낌의 액자들
북유럽 감성이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좋았던 곳.


눈 쌓인 타르투의 동네풍경. 타르투의 에어비앤비 집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풍경.


입구부터 중세 유럽으로 타임슬립한 느낌. 15세기에 사용했던 출입문 계단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
탈린에서의 두 번째 에어비앤비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 예전에 사용하던 굴뚝에 놓인 양초에 불 붙이고 불멍하며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숙박하며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메리트는 바로 현지인 친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고는 하는데, 또 어쩌면 여기에 오는 것이 이번으로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느낌은 조금의 용기도 주기 때문에 말 걸고 대화하기가 더 쉬워진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대부분 여행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고 여행자를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을 예약할 때 그리고 도착해서 잠시 만나 열쇠를 건내줄 때만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호스트도 있지만, 그 외에 '네가 추천하는 맛집은 어디야?', '네가 생각하기에 여기에서 꼭 가봐야할 장소가 있어?' 등등 여행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호스트들은 동네주민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취향을 조금은 섞은 현지인들이 가는 곳을 추천해준다. 그리고 함께 동행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에어비앤비에서 머무는 동안 커뮤니케이션을 쌓아나가면 다시 한국으로 떠날 때쯤이면 꽤 호스트와 친해져있다. 특히, 코로나 판데믹 동안에는 호스트 친구들이 꽤 도움이 되었는데, 현지인들만이 알 수 있는 코로나 관련 정보에 대해 잘 알려주었기에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친구들은 나에게 여행지에 대한 소속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했는지도 장소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 탈린에서 두 번째로 머물렀던 집에서 만난 호스트 트린과는 함께 밥도 먹고, 트린이 추천해준 미술관도 가면서 에스토니아에 대한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에스토니아와 에스토니아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었다.



코로나 판데믹 때문에 조금은 불안한 상황에서 나에게 따뜻한 안식처를 제공했던 3명의 호스트에게 감사하다.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게 여러 정보를 알려주었고, 늘 제한된 상황 속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은지 안부도 물어주었기에 에스토니아에서 지냈던 겨울이 꽤나 포근하게 느껴졌다.


다시 에스토니아를 찾게 된다면 또 다시 머무르고 싶은 곳이 생긴다는 것, 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내가 에어비앤비를 애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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