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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Oct 13. 2021

인종에 대한 차별

내가 이방인임을 잊게 해준 그 곳

인종차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묘한 불쾌함을 불러 일으키는 경험.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겪게 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해외여행을 좀 가봤다는 사람치고 인종차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무수히 많은 영웅담과 같은 해외여행의 에피소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레퍼토리.


나만 해도 인종차별을 꽤 겪었다.

이집트의 전통시장을 걸어 다니다가 남자 상인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나에게 캣콜을 날렸던 일.

뉴욕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왠 라틴계 여성이 내 머리채를 갑자기 잡아당기면서 욕했던 일.

독일 베를린에서 청소년들이 눈을 양 옆으로 찢으면서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던 일.

그리고 너가 말하는 영어는 못 알아 듣겠다는 식의 제스쳐, 서양인들에게는 쉽게 레스토랑의 좋은 자리를 내어주면서 동양인들은 줄 서서 기다리게 되는 일 등등.

'이게 지금 인종차별인가?' 싶을 정도의 사소한 무시나 차별에서부터 대놓고 동물원 안의 원숭이처럼 사람을 무안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배척까지. 처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겠던 상황들이 이제 20개 이상의 나라를 다니면서 조금은 무던해졌다.


사람은 늘 자신과 다른 것에 호기심도 느끼는 반면 두려움도 느끼니까. 인종차별도 그런 인간의 본성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나라이다. 내륙으로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고 냉전 시대에는 구소련 국가였기에 러시아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만, 에스토니아가 처음으로 나라로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13세기 즈음에는 발트해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스웨덴, 덴마크 등의 지배와 침략을 받았던 만큼 북유럽의 영향도 많이 받은 나라이다.


흔히 북유럽 나라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하기 전까지는 북유럽에 발을 딛은 적이 없었던 나는 솔직히 이 말을 반신반의했다. '그래, 정말 인종차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던해졌다지만 역시 인종차별을 받는 그 순간은 '역시 나는 여기서 이방인이구나.'라는 조금 외로운 마음을 느끼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했던 3개월 간, 나는 단 한번도 인종차별 없이 생활했다.

다른 북유럽 나라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하며 '왜 에스토니아에는 인종차별이 없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고, 에스토니아에서 만난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그리고 알게 된 현지인들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도 하면서 나는 이런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에 인종차별이 없는 이유에스토니아의 역사에 있다.


에스토니아는 7백년 가까이 무려 6개의 주변 강국에 의해 지배와 침략을 꾸준히 받아왔다. 덴마크, 리보니아(지금은 없어진 중세국가), 스웨덴, 폴란드, 독일, 러시아. 에스토니아가 현재와 같은 국가로서 독립을 이룬 건 1990년이 되어서었다. 13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자신들의 영토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나라라고 부를 수 없었던 에스토니아인들은 누구보다 차별 받는 것에 대한 고통을 잘 안다고 에스토니아에서 만난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이야기해주었다. 덴마크나 스웨덴의 왕실을 배불리기 위해 에스토니아의 소작농들이 고생한 중세부터 독일이나 러시아가 지배했던 근대에는 에스토니아인들이 전쟁의 총받이로 쓰여지거나 강제노동과 이주로 고통받았다. 이런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생각인 것이다.

현재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은 에스토니아인이 아니다. 러시아나 다른 발트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 주변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이 질문은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받는 단골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에스토니아에서 이 질문을 받은 적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그만큼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따라, 어떤 나라 사람인지에 따라 나를 재단하려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단순히 친해지거나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질문을 받은 다음 듣는 이야기들은 십중팔구 한국이나 아시아에 대한 그들이 가진 여러 편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에스토니아에서 이 질문을 처음 받았던 것은 한 카페에서였는데,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나 요즘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럴 것 같았어.'라는 이야기였다.


보통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가 아닌 그 외의 나라에 가게 되면 제일 많이 받는 시선이 아이들의 시선이다. 우선 생긴 것부터 다르니 아이들의 눈에는 내가 신기한 동물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 귀여운 얼굴로 나를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거나 나보다 덩치 큰 유럽의 청소년들이 인종차별의 제스쳐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걸 또 가볍게 웃어 넘길 수 만은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 에스토니아의 아이들은 나에게 전혀 이상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에스토니아인들이 이야기하길,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교육을 꾸준히 받는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정작 내 눈 앞에 닥쳤을 때 누구나 차별과 편견 없이 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북유럽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유럽식 교육이 에스토니아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인의 역사 속에 쌓아온 DNA도 제대로 한 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했던 3개월 간, 나는 마치 내가 원래부터 거기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평온하게 생활했다. 내가 에스토니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내가 한국인 그리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도 이익도 없이. 내가 이방인임을 한 번도 느끼게 하지 않았던 곳.


그래서 나는 에스토니아를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아픈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 탈린의 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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