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리지 Dec 13. 2020

행복한 연인들의 특징

단감

내 주변엔 오래 연애한 커플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5년 동안 자타공인 알콩달콩 잘 사귀다가 결혼에 성공한 커플의 얘기를 해보려 한다.


내 친구 A는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아침 수영 교실에서 만났다. 나도 수영을 2년 정도 했지만, 수영장만큼 자연인 그대로의 상태를 보여줄 만한 운동도 없는 것 같다. 아침에 로션도 바르지 못한 상태로 이마를 꽉 죄는 수영모를 끼고, 웬만해선 어울리기 힘든 일체형 수영복을 입는다. 수영을 하고 나와서 샤워장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 수경이 꽉 누른 자국이 마치 오리너구리가 따로 없다.


그런 수영장에서, A의 남편은 A에게 반했다. A는 시원시원하고 싹싹한 성격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어른들께도 딸처럼 붙임성 좋게 다가간다. 수영장에서도 친구는 자신의 능력을 백 프로 발휘해 모든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친해졌고, '어른들께 잘하는 여자'가 이상형이었던 A의 남자친구는 A에게 한눈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운명처럼 둘은 생일도 똑같았고 어른들께 잘하는 것도, 처음 본 사람에게 붙임성 있게 금방 친구가 되는 것도 똑같았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위기가 찾아왔다. 친구가 고시 공부를 할 겸 오빠가 사는 다른 지방에서 몇 달 동안 살게 된 것이다. 친구는 그래서 연애를 당장 시작하긴 힘들다고 했지만 남자는 기다렸다. 몇 달 동안 매일 친구에게 응원의 문자를 보냈다. 3살 연하남의 한결같음에 친구도 점점 마음을 열었고 못 보는 기간 동안 오히려 신뢰가 쌓이게 됐다.

그렇게 친구가 공부를 끝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남자는 커플링을 준비해서 친구를 맞이했고, 둘의 연애가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서로의 부모님께 마치 아들딸처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친척 모임에도 스스럼없이 함께 했다. 또 서로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다. 보통 친구의 남자친구를 만나면 어색해하는 바람에 우리가 분위기를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A의 남자친구는 마치 예전부터 우리와 알고 지낸 친구처럼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아마 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둘은 서로의 시간도 존중해줬다. 둘 다 친구들을 좋아했기에 각자의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잘 이해해줬다. 그리고 나면 꼭 함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각자의 강아지를 데리고 함께 산책을 하는 등 소소하게 함께 있는 시간도 꾸준히 마련했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간다고 해도 신뢰가 쌓이니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요리 유튜브를 해도 될 정도로 요리에 소질이 있는 A는 남자친구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했고,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는 친구의 개인 트레이너가 되어 주었다. 오래 기른 강아지가 사고를 당해 A가 힘들어했을 때도 남자는 A가 우울할 틈이 없게 거의 매일 자신의 강아지를 데리고 A를 찾아가 함께 산책을 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코로나로 결혼식이 미뤄지는 등 위기가 있었지만 둘에게 결혼식은 결승 지점이 아닌 일종의 이벤트 같은 느낌이었다. 늦춰지면 어쩔 수 없는 거지-하는 마인드였다. 신혼집을 꾸밀 때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너무 예민하지도 너무 무심하지도 않게, 딱 적당했다.


둘은 그 흔하다는 메리지블루도 겪지 않고 <미녀와 야수>에 나올 것 같은 웨딩홀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행진 때 하객들의 카메라를 일일이 바라보며 연신 브이(V)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친구의 남편을 보니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제주도로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났다.


옆에서 몇 년 동안 친구네 커플을 지켜보며 행복한 연애, 행복한 결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았다.  


1. 가치관이 비슷하며
 2. 대화가 잘 통하고
3. 수많은 이해와 신뢰가 쌓여야 한다는 것
4.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놓치지 말 것.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은 A의 커플을 보면서, 몇 년 후엔 우리 친구들 부부가 모두 함께 모여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해본다.



단감


앞마당 감나무에 단감이 열렸다.

흰 꽃 아래 올망졸망 수줍어하며

풋내 나던 연둣빛 아기 감들은

백 번의 달빛과 백한 번의 햇빛 아래

천 번의 빗방울과 이천 번의 바람 아래

서로를 의지하며 꼭 붙어 있었다

달빛 아래 나누었던 백 번의 이야기와

바람 아래 나누었던 이천 번의 생각들

생각은 여물어 이해가 되고

이해는 여물어 믿음이 되고

믿음은 여물어 단감이 됐다


감나무에 단감이 잘 영글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보다 힘든 건 너와의 추억을 버리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