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리지 Dec 27. 2020

좋은 사람, 맞는 사람

8번에서 3번까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좋다'는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이기에, '좋다'라는 낱말의 의미는 인구의 수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모든 이에게 친절한 사람.

원칙을 잘 지키는 도덕적인 사람.

의리가 강하고 정이 많은 사람.

동정심이 많고 마음이 여린 사람.

화를 내지 않고 천사 같은 사람 등등...


그러나 분명한 건, 좋은 사람과 잘 맞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넌 참 좋은 사람 같아. 우리 한번 만나볼까?

그가 내게 고백한 지 3개월 뒤, 우린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채 헤어졌다. 사귀는 동안 특별히 싸운 적도, 화를 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둘 다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왜 우린 둘 다 좋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맞지 않았을까?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사랑의 언어'다. 저자 개리 채프먼은 사랑의 언어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인정하는 말 

2. 선물

3. 함께하는 시간

4. 봉사

5. 스킨십


사람들마다 이 5가지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사랑의 언어 우선순위는 질문지를 통해 검사해볼 수 있다. 질문에 답을 고르고 가장 많이 선택된 것부터 차례대로 순서를 매기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인정하는 말이 가장 중요했다. 사랑한다는 표현, 칭찬과 공감의 대화를 하면서 사랑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내 추측으로) 스킨십이 가장 중요했다. 그는 스킨십에는 인색하지 않았지만 사랑한다는 말 표현은 낯간지러워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안 돼?
으휴, 애도 아니고.


그는 나의 요구를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난 서운해했다. 만났을 땐 분명 나를 사랑하는 게 느껴지는데, 만나지 않을 땐 왜 사랑한다고 표현을 안 해주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심각해지며 만나기도 점점 어려워졌다. 애정 어린 대화와 공감의 결핍이 지속되자 난 사랑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런 내 감정을 느꼈고 무엇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지도 알았다. 그래서 그도 맞춰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건 본인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가 20대 초반이었거나 첫 연애였다면 서로 지지고 볶으며 어떻게든 맞춰가려고 노력을 했겠지만 30년 동안 굳어질 대로 굳어진 자아는 바뀌기를 거부했다.


그가 널 사랑하지 않은 거라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누굴 만나도 그렇게 연애를 했다고 말했다. 나에게 자신이 이상한 걸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다면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넌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냥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지.

둘 다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랑의 언어는 달랐고, 결국 이별을 맞이했다. 왜 헤어졌나는 물음엔 그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겠지.


"성격 차이로요. "


사랑의 언어가 같은 사람은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부디 다음번엔 그도, 나도 '잘 맞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사랑을 하길.




8번에서 3번까지

              

넌 내가 어떤 사람 같니

난 네가 좋은 사람 같아     


홍대역 8번 출구

간지럽게 스치던 손끝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야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     


홍대역 3번 출구

간절하게 스치던 손끝     


8번에서 3번까지

차곡히 쌓인 추억을 꺼내     


3번에서 8번까지

되짚어가는 발자국마다     


너의 체온

너의 목소리

너의 뒷모습과

너의 그림자까지      


하나씩 하나씩

애써 떨쳐 버렸는데     


내 손끝에 매달린

네 마지막 눈빛만은     


차마 놓지 못하고

가져와 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과 벚꽃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