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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Nov 10. 2015

닮지 않은 쌍둥이 자매

Jülich 의 추억 vol.11

독일 서부 쾰른의 기차역에서 밝고 경쾌한 목소리를 가진 두 소녀를 만났다.



두 소녀는 

짧은 금발 머리의 Uliana와 갈색 눈짙은 갈색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Ira로, 둘은 Köln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Jülich 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에 막 도착했다.


등 뒤에 자기 키를 훌쩍 넘어서는 커다란 배낭을 멘 Uliana와, 커다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은 채 한 손엔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큰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Ira의 모습은 누가 봐도 눈에 띌 정도로 확연히 달랐다.


너무 상반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을 사로잡을 정도였다. 외모도, 스타일도, 취향도 심지어는 국적도 달라 보이는 이 둘이 어떻게 친구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그들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Jülich로 가는 기차를 여기서 갈아타는 게 맞나요?


공교롭게도 우리는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멤버였고 기차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대화는 서로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려고 하는 지'등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소녀들의 경쾌한 깔깔거림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독일인 3, 한국인 1, 일본인 3, 우크라이나 3, 폴란드 1, 터키 3 인으로 구성된 멤버 중 하나로 3주 간 청동시대 유물을 발굴하고 박물관에 전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날부터 약 3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24시간을 꼬박 함께 지내게 된 두 소녀와 나는 서로의 잠버릇과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선생님까지 속속들이 알게 된 사이가 되었고, 그러던 중 서로의 형제, 자매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Uliana와 Ira에게도 형제에 관해 묻게 된 나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초등학교 시절 주머니 속에 숨겨둔 알사탕을 꺼내주던 단짝친구의 그것을 보았다. 조용히 서로 바라보던 Uliana와 Ira 중 먼저 말을 시작한 건 Ira였다.




난 여동생이 한 명 있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따로 살기로 하셨는데 그때부터 나는 아빠와, 내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걸로 하고 헤어져서 함께 자라진 못 했지만.


참 어릴 때 였는데 누구랑 살고 싶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아빠라고 대답했어.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서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 난 아빠와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을 구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누릴 순 있었어. 그 덕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보냈는데, 난 대학은 우크라이나로 가고 싶다고 했어. 아빠는 내 생각을 지지해 주셨고. 물론 우리 아빠는 아주 바쁜 편이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아셨을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년에 우크라이나에 왔지.




Ira는 누가 봐도 미국인이라고 할정도로 특유의 깔끔한 영어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가졌고 뉴욕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조차도 뉴욕을 옆 동네 처럼 느낄 정도로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Ira가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건 그동안의 대화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지만, Ira는 엄마의 부재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늘 없이 밝았다.


Ira를 생각하면 해바라기 꽃이 생각난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햇살을 온몸으로 가득히 담아내는 해바라기.


Ira의 이야기가 끝나자 Uliana가 입을 열었다.




Ira를 보면 가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기도 해. 그래서 Ira와 나누는 대화가 늘 새롭고 즐거워.


나도 부족함이 없이 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어,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과 그걸 나눌 때 느끼는 행복을 엄마로부터 배웠어, 물론 그것들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용기도 함께.


어릴 적 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했어. 내가 사는 동네는 굉장히 작았는데 점점 더 많이 궁금해졌거든, 더 큰 세상이.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는 대학에 왔고, 여기서 Ira를 만났어.


근데 그거 알아?

Ira는 아빠와 둘이 살았지만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어.




"아, 둘이 절친이 된 이유가 이거였구나~ 이런 공감대로 서로 더 돈독해 질 수 있었구나"

 하고 대답하자.


Uliana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아니, 나는 Ira의 엄마와 살아.

순간 나는 불현듯

사랑과 전쟁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았다. 결혼과 이혼, 또 다른 결혼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일 뿐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인이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지만 혹시라도 내 표정에 당혹스러움이나 의구심, 타인을 제멋대로 판단하는 무례한 사람의 표정이 드리우진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너희 어머니께서 새로운 사랑을 찾으신 거구나?"


그러자 이번엔 Ira가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


아니, 우린 쌍둥이야.

쌍둥이 자매라구. 우린 헤어진 지 거의 15년 만에 대학에서 처음 만났어. 그것도 같은 과에서. 우리 엄마와 아빠가 헤어질 때 우린 아주 어려서 서로를 거의 잊고 지낼 뻔 했어. 근데 대학에 와서 Uliana가 나를 보고 너무 놀라는 거야. 자기 엄마와 너무 닮았다고. 엄마를 보는 것 같다고 말이야. 믿을 수 없었지만 Uliana 엄마의 사진을 보는 순간 모든 게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았어.


금발인 우리 아빠 딸인 내가 왜 갈색 머리를 가졌는지, 내 갈색 눈이 누구를 닮았는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모두 쿨하게 인정하셨지.


그때부터 나랑 Uliana는 같이 여행을 다니고 있어, 어린시절에 나누지 못한 자매의 정을 나누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든.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은 가족애를 강조하는 옛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Blood is thicker than water 라는 말이 외국에도 있는 걸 보면, 가족간의 깊은 정은 국경을 넘고 세대를 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희미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어도

한 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지구 반 바퀴 거리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시 서로를 끌어 당기는... 뜨거운, 때로는 끈적할 정도로 진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느낀 따뜻한 순간.


Ira와 Ul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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