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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Nov 15. 2015

루체른의 백조를 사랑한 그녀

루체른의 추억 Vol.12

루체른 카펠 교 아래에서 그녀를 만났다.


안녕, 좋은 아침이예요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도 거른 채 호텔 밖으로 나섰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면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짐을 모두 챙기고 1층 로비로 내려와 호텔 창밖의 흐린 날씨를 보고도 망설이지 않고 나설 수 있었던 건 어젯 밤 야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나와 카펠 교로 향했다.

어젯밤 카펠 교를 비추던 조명은 새벽 안개만을 남기고 사라진 뒤였지만 그 고풍스러움과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어젯밤 카펠교에 아름다움을 더하던 조명 불빛이 사라진 수면 위에는 하얀 백조들이 대 그곳을 수놓고 있었는데 백조들 따라 시선이 머무는 곳에 그녀가 있었다.


수많은 백조들의 엄마인 그녀는 매일 새벽 해가 뜨기 전 물가로 나와 백조들에게 모이를 준다고 했다. 물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지만 지금같이 추운 날엔 잘 먹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내내 백조들이 가득했다.



"루체른의 백조들은 언제나 늘 그렇듯

이 자리에서 루체른을 지켜내고 있어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듯 말이에요. 이런 백조들을 나는 내 가족만큼 사랑해요. 언젠가 당신이 루체른에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도 루체른의 백조들은 여기 있을 거예요."



이윽고 그녀 주변으로

백조와 비둘기, 오리 등 물가의 모든 새가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보았던 영화 '나 홀로 집에 2'에 나온 장면이 떠올랐다. 꽤 오래전에 본 영화였지만 내 나이또래의 사람들이 그랬듯 나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케빈과 함께였기에 장면과 대사 하나하나를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그중 케빈이 뉴욕 플라자 호텔 근처 공원에서 만난 비둘기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데 루체른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은 영화 속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나 홀로 집에 2' 중에서


아줌마 :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날 배신했단다. 다시는 누구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을 믿지 않아.

케빈 : 그건 옳지 못해요.


아줌마 : 다시는 상처받기 싫거든... 쓸모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그를 곧 잊어버린단다...

케빈 : 잊는 게 아니라 바빠서 기억을 못 하는 거예요. 살다 보면 그렇잖아요. 우리 할아버진 내 머리가 목에 붙어 있지 않으면 매일 스쿨버스에 놓고 다닐 거래요.


아줌마 : 누굴 믿었다가 다시 상처받을까 겁나...

케빈 : 알아요... 롤러스케이드가 있었는데, 난 상자에 모셔두기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아줌마 : 아니.

케빈 : 망가질까 겁이 나서 방 안에서 두 번 정도 탄 게 다였어요.

아줌마 : 사람의 감정은 스케이트와는 달라.

케빈 : 같을 수도 있죠.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거잖아요. 감정을 숨겨두면, 내 스케이트처럼되고 말 거에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잃는 건 없어요.

아줌마 : 그럴듯하구나.


...중략...


케빈 : 메리 크리스마스

아줌마 : 메리 크리스마스

케빈 : 누군가가 필요하면 절 믿으세요. 아줌마를 잊지 않을게요.




누구나 자신만의 스케이트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소중하게 간직만하다 사용하지 못해 결국은 쓸모없어져 버린... 그래서 어느샌가 내 기억에서 조차 잊혀져 버린 나의 스케이트는 무엇이었을 까. 그리고 내가 지금 망가져 버릴까 봐 차마 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스케이트는 무엇일까.


카펠교 아래를 수놓는 수많은 백조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백조들을 만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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