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ie Nov 22. 2015

꽃집의 아저씨

서울의 추억 vol.14


"안녕하세요. 꽃 사러 왔어요."


- 누구한테 선물하시게요?

- 저요.


출근 길에 늘 보이는

'꽃'이라고 쓰인 커다랗고 새빨간 궁서체 간판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꽃'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다.  물론 간판이라는 것이 뭐 특별할 것이 있겠냐만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독특한 간판을 종종 보게 된다. 어느 날 파리의 생미셸에서 약속이 있어 골목길을 걷던 중 간판들을 보고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왜 여기엔 불 들어오는 사인이 없지?


죄다 나무로  조각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은, 혹은 철사를 이리저리 구부려 만든 간판들은 우리나라 건물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것들과 알 수 없는 이유로 확연히 달랐고  나는 저녁이 되자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져있을 때까지 문을 연 가게가 없으니까

 

해 진 뒤 저녁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일상이고 외식보단 집에서 식사하는 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저녁 간판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오늘 출근길에 만난

서울 꽃집의 간판은 이른 아침 햇살과 새빨간 네온사인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아우라로 내 발길을 끌었고  나는 그렇게 꽃집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꽃 사러 왔어요.


강남역 대로변에 위치한

이 작은 꽃집은 세로로 긴 형태로 생긴, 강남의 비싼 땅 값을 반증하듯 자투리 공간활용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으로 건물 사이의 공간에 유리벽을 세워 만든 곳으로, 꽃 집 자체가 마치 작은 식물원을 연상케 한다.


공교롭게도 

꽃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나를 반긴 건 꽃집의 아름다운 아가씨도, 아주머니도 아닌 중년의 푸근한 인상을 한 아저씨였다.


어떤 꽃을 살지, 어떤 꽃이 오래 갈지 등을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던 아저씨가 물었다.


"누구한테 선물하시게요?"

"...저요."


출근길,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꽃집에서 받은 질문에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한 꽃을 사게 되었다.


"어디에 두실 거에요?"

"사무실 책상에요."


"꽃 병은 있어요?"

"아, 없어요."


내가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를 때까지

조용히 옆에서 기다 꽃집 아저씨는 내가 꽃을 한 다발 고르자마자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시더니 내가 고르지 않 꽃나무 몇 가지를 더 꺼내와 이리저리 손으로 모양을 잡아다가 또다시 어디선가 빈 꽃병을 하나 들고와 꽃꽂이를 하기 시작다.


아저씨의 손에서 완성되어가는 꽃꽂이를 바라보면서 요즘 대세인 쿡방에서 보여주는 '요리하는 모습'보다 더 매력적인 꽃꽂이 하는 모습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꽃집을 나선 내 손에는 도심속 출근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꽃병이 들려있었고, 손에 들린 꽃을 보며 회사로 걸어가는 내내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물만 부어서 두세요.

푸근한 꽃집 아저씨의 작품


너무나도 평범했을 나의 출근길을

대단히 특별하게 만들어 준 꽃집의 아저씨 덕분에 꽃이 싱싱하게 향기를 내뿜어 주었던 약 2주라는 시간동안 문득 문득 바쁜 일상에 쉼표가 되어주는 소중한 순간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때로는 나를 위한 선물도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대단히 특별한 꽃 다발의 추억.


이전 이야기

프랑스 산기슭 말들의 친구, 장끌로드 아저씨


다음 이야기

프랑스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만난 사람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산기슭 말들의 친구,  장 끌로드씨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