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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Dec 02. 2015

프랑스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만난 사람들  

마르세이의 추억 Vol.15



히치하이킹

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데는 국민예능이었던 1박 2일의 역할이 컸다. 여섯 명의 멤버 중 낙오되는 사람이 돈 한 푼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던 히치하이킹은 인심 좋은 운전자와 이미 얼굴이 대중에게 알려진 연예인이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카메라와 할 수 있는 훌륭한 이동수단으로 보였지만 나와는 접점이 없는 다른 세계의 것 이었다.


예능에 출연할 일도,

이동중 낙오해 돈 없이 목적지까지 갈 일도 없던 나는 뜬금없이 스페인, 터키, 독일에서 온 친구들과 히치하이킹을 계획하며 말 그대로 고생을 사서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주먹을 꽉 쥐고 엄지 손가락만 편채 오른쪽 팔을 길가로 곧게 뻗고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으면서.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던 나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마르세이로 떠나기로 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지중해에 풍덩 몸을 던지는 상상을 하며 계획에 없던 마르세이로 떠나기 위해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건 이동수단과 숙소, 그리고 예산이었는데 마르세이 지도를 앞에 두고 선택한 이동수단은 히치하이킹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르세이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들을 만나기 전 까지만 해도

나에게 히치하이킹이란 보기에 없는 단어였기에 차라리 각자 이동해서 마르세이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것이 내 의견이었고 나는 기차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앞다투어 자신들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오토스탑(히치하이킹)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오토스탑으로 이동한 이야기, 쾰른에서 베른까지 돈 한 푼 없이 이동한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만 해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지만 리옹에서 마르세이까지 오토스탑으로 갔다는 라덱의 이야기가 설득의 정점을 찍었다. 우리가 있던 지역은 리옹보다 더 아래에 있는 곳으로, 마르세이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고 계산대로라면 오토스탑으로 약 두세 번 정도면 마르세이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

멤버들은 남녀 짝을 이루어 마르세이로 가는 도로 위에 섰다. 나는 터키에서 온 세르잔과 짝이 되었다. 혹시 모를 오토스타퍼를 위해 노하우를 공유하자면


1. 안전이 우선이다. 기상천외하고 위험한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 가급적 오토스탑을 하지 않는다.

2. 오토스탑을 해야만 한다면 현지 지도를 이용해 고속도로 현황을 파악하고 분기점을 목적지로 적는다. 나의 최종 목적지 까지 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2. 오토스탑을 해야만 한다면 현지 지도를 이용해 고속도로 현황을 파악하고 분기점을 목적지로 적는다. 나의 최종 목적지 까지 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3. 내 앞에 멈춰 선 차가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목적지와 신원을 밝힌다.


나는 총 2번의 오토스탑으로 마르세이 역에 도착했는데 (마르세이에서 만난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굉장한 행운이었다) 처음 탄 차는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아주머니의 차였다. 뒷좌석에 짐을 가득 싣고 이사를 가던 아주머니는 흔쾌히 멈춰 서서 나와 세르잔을 태워주셨는데 짐으로 가득 찬 뒷좌석 한 구석에는 내가 자리를 잡았고 세르잔은 보조석에 앉았다.


우리를 태워주었던 그녀는 

두 딸을 두었는데 딸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나자 더 이상 큰 집에 살 필요가 없게 되어 작은 집을 구해 이사를 가는 길이라고 했다. 원래 살던 곳도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더 조용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두 딸들이 커가는 걸 보면서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걸 미리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도 했지만 막상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집은 허전함과 쓸쓸함만이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정리하다 결혼 전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보게된 그녀는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자마자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아주머니와 헤어지기 전 기념으로 남겼던 사진



고속도로 분기점까지 데려다 주신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뒤 내가 '오는 내내 쪼그리고 오느라 허리가 아팠다'고 앓는 소리를 하자 세르잔은 '아주머니의 강아지가 내내 발가락을 핥아 대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라는 말과 함께 축축하게 젖은 샌들을 내보이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우디를 몰고 온 커플이

다시 도로 위에 선 우리 앞에 멈춰섰다. 이들은 신혼부부로, 마르세이에서 휴가를 보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오토스탑으로 여행하는 우리를 보고 대학시절 자신들의 모습이 생각나 차를 세웠다는 이 아름다운 부부는 마르세이로 가는 내내 신혼여행을 위해 공부한 마르세이의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꼭 놓치지 말아야 하는 명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르세이 기차역까지 우리를  바래다주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마르세이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마치 우리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이고 예전부터 함께 계획한 휴가를 떠나고 있는 것 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고 문득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들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 피천득 '인연'


그리고 옷자락도 스치지 않은

길 위에서 인연을 알아보고 멈춰 선 이 부부야 말로 대단히 현명한 사람이라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우리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오토스탑으로 도착한 마르세이에서 찍은 첫번째 사진


마르세이 역에 도착한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다른 팀들을 기다렸고, 뒤이어 도착한 팀들을 맞이했다. 모두가 각자의 추억을 담아왔는데  그중에서도 강아지와 함께 지푸라기가 가득한 트럭 짐칸에 앉아서 온 수니와 크리스티나의 무용담이 정점을 찍었다. 이들은 단 한 번의 오토스탑으로 마르세이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이들을 부러워 할 수 없었다.


크리스티나와 수니는 강아지와 함께 트럭을 타고 왔다


프랑스에서 경험한 오토스탑은

내 앞에 멈춰 설 차에 대한 기대와 불안, 두근거림을 간직한 채 처음 만난 현지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지만  혹시 누군가가 오토스탑을 계획하고 있다면 신중, 또 신중하길 바란다. 





이날 보았던 마르세이의 노을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이동수단만을 생각하고 숙소를 정하지 못한 채 마르세이에 도착한 멤버들이 제안한 해변에서의 노숙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마르세이에 오기 전 이들에게 오토스탑을 설득당했던 나는, 침낭을 깔고 해변에 자리를 잡은 이들을 결국 호텔로 가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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