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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Jan 06. 2016

발걸음을 맞춰 걷는다는 건

에펠탑의 추억 Vol.16


파리에서의 일이다.


파리에 있는 동안 점심 약속이 없을 땐 늘 공원으로 갔다. 도심 속 쉼터가 되어주는 파리의 공원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곳은 에펠탑  앞마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샹드마르스 (Champ-de-Mars)다.


프랑스어로 마르스(전쟁의 신)의 들판이라는 뜻의 샹드마르스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와 에펠탑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샹드마르스에서 적당한 나무를 찾아 자리를 잡고 근처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볼 때면 온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다. 책에 에펠탑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잠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내가 책 속에서 보던 그 에펠탑이 내 눈 앞에 있다니. 파리에 온지 한 달이나 됐지만 가끔 실감이 나지 않아 문득문득 볼을 꼬집어 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에펠탑에 올라가 보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바라본 에펠탑


책을 덮고 남은 샌드위치를 입안 가득 문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에펠탑에 오르기 전 티켓박스에서 입장권을 사고 나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걸어올라 갈 것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갈 것인가.


만약 누군가 함께 왔다면 어떻게 올라갈지 서로 의견을 맞추어 보거나 가위바위보라도 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테지만 혼자 일때 그저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걸으면 그만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말고 '계단으로 갈걸'하고 아쉬움을 내뱉는 사람도 없고 계단을 오르다 말고 갑자기 '다시 내려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자'며 투덜거릴 사람도 없다.


나는 그저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주변의 풍경에 집중하며 걸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내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아지고 처음 만나 이야기 나눌 인연이  많아진다.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걷는 게  힘들어진 것도, 다리에 쥐가난 것도 아닌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발아래로 구멍이 뻥뻥 뚫린 철구조물을 바라보며 '그래, 정역학 시간에 저런 구조물들 많이 배웠었지. 'x 축, y 축, z 축으로 이렇게 힘이 분산되고'라며 머릿속으로 화살표까지 그려가면서 정역학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고 있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편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한 손으로는 계단 옆 난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시나무 떨듯 후들거리는 무릎을 붙잡고 그대로 멈춰 서서 생각했다.


'눈을 감고 올라갈까? 아니야... 다시 내려갈까? 아니야.... 그러기엔 여기까지 온 게 너무 아까워...' 바로 그때였다.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바로 위 계단에서  사내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딴 딴따다 딴 딴따다~" 결혼행진곡을 입으로 소리 내며 내려오는 7~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 뒤로 그들의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부부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지금 내가 왼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다리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고 한 손으로 난간을 꼭 붙잡은 채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올라가는 길이고 그녀는 내려오는 길이라는 점과 내 오른손은 나의 떨리는 무르팍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녀의 오른손은 내 무릎보다 더 두꺼운 남편의 팔뚝을 붙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쪽 팔을 그녀에게 내어주고 반대편 손으로는 그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서 사랑이 가득 담긴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 걸어 내려오는 그와 그녀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런 그들의 주변을 두 사내아이는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엄마 아빠가 지금  결혼하는 것 같다'며 결혼행진곡을 입으로 연주하고 있었고 그녀는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들이 나와 인사를 나누고 내 주변을 스쳐간 뒤에도 "딴  딴따다~"하고 계단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내 발밑에 쫙 깔린 불안함, 눈앞에 펼쳐진 두려움을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웃으며 걸어 갈 수 있는 힘은 바로 함께 발걸음을 맞춰 걸어가는 부부와 그런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자라날 아이들,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가 지났을 까 마음을 다잡고 에펠탑 2층에 올라왔다. 덜덜 떨며 계단을 올랐겠지만 사실 어떻게 올라왔는지 올라온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에펠탑 2층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에펠탑에 오르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뷰


그리고는 다짐했다.

다음엔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겠다고. 그리고 함께 맨 꼭대기까지 오르겠다고. 함께 에펠탑을 오르면서 오늘 만났던 가족의 이야기를 꼭  들려줘야겠다고.





그리고 약 6년 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에펠탑에 올랐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6년 뒤, 에펠탑 꼭대기에서
6년 뒤, 에펠탑 꼭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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