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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Jun 06. 2016

햇살이 쏟아지는 지중해를 만나다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의 추억 Vol.28


네르하에서는 태양이 항상 뒤를 쫓았다.


네르하로 향하는 길,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하늘 아래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차 안의 에어컨을 세게 틀어보아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차에서 내려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네르하에 도착했다.

네르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니 유럽의 발코니 (BALCON DE EUROPA)라는 안내판이 가장 먼저 반긴다.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차에서 내려 걷는 그 길은 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앉아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가끔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며 더위를 식혀 줄 때쯤 멀리서 시원한 바람 한줄기 불어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유럽의 발코니가 나타났다.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로 다 담아내고 있는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눈길이 닿는 곳에는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바다를 보고 살았다면  '지구는 편평해서 계속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낭떠러지가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했던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유럽의 발코니에 서서 

햇살이 쏟아지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고개를 돌려 해안가 절벽을 따라 지어진 하얀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 '부자가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네르하에 별장을 하나 사고 싶어요

라고 대답해야만 할 것 같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에메랄드 빛 지중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물속 바위 개수를 하나하나 셀 수 있을 만큼 속을 다 내보이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페인에서는 내가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곳의 사람들과 음식과 공기와 풍경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숨기지 않았다. 즐거운 만큼 즐기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내 속을 다 내보일 수 있었다. 스페인은 그런 나라다.



투명한 바닷물에 손이라도 담궈야겠다는 심산으로 해안으로 내려갔다. 작은 배 두척이 바다를 향해 놓여있고 그 옆으로는 태양을 보는 것 만으로는 모자라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늘을 피해 해변에 누워 있었다.



해안가를 걷다 발견한 이 곳의 주인.

조용히 한걸음 한걸음 해변을 산책하는 그녀의 뒤로 에메랄드 빛 바다는 하얗게 파도가 되어 부서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근처 식당을 찾았다.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올리브 오일은 이제 테이블 위에 없으면 이상할 정도다. 신선한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소금 약간, 조금 더 사치를 부리자면 발사믹 식초 몇 방울. 이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한 끼 식사의 시작이 된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올리브와 틴토 데 베라노를 주문하고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네르하가 다 내 것이 된 것 같다. '지중해를 한 컵 떠서 마신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한참을 웃었다.


뒤이어 주문한 빠에야와 보케로네스 프리토스(엔초비 튀김)가 나왔다. 물가가 저렴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답게 한 가지 메뉴가 10유로를 넘지 않는 착한 가격이라 몸도 맘도 더 풍요로워졌다.



1년 내내, 심지어는 한 겨울에도 온화한 날씨인 네르하는 잠시 머무는 사람 마저도 온화하게 만들만큼 쏟아지는 햇살을 가득 담은 아름다운 지중해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탁 트인 에메랄드 빛 바다와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 해안가에 산산이 부서지던 파도. 그리고 그 모든 걸 뒤로하고 유유히 해변을 거닐던 친구의 모습까지. 광활한 바다와 소소한 아기자기함을 동시에 간직한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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