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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Sep 15. 2024

백수가 아닌 홈 프로텍터

집을 지키며 자아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2024년 1월 31일,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퇴사했다. 퇴사를 한 이유는 '나의 자아를 찾겠다!'

하지만 나의 자아 찾기 여정은 쉽지 않았다. 밤마다 괴로워하다 겨우 잠들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새벽기상을 해야 했던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니 게을러졌다. 쉬는 시간이 생겼으니 하고 싶었던 시력교정술을 받고 여행도 다녀오고 치아교정을 시작했다. 쉬면서도 불안에 떨며 지냈다. 나는 겨우 이렇게 살려고 퇴사를 한 걸까?


어릴 적부터 카페 알바에 대한 환상이 있던 터라 꼭 해보고 싶었다. 여러 카페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봤지만 6년 간 전혀 다른 일을 했던 터라 쉽게 합격이 되지 않았다. 계속된 불합격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불합격되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고 깔끔히 포기하겠다고 마음먹고 마지막 면접을 봤다. 거짓말 같이 합격했다. 교육기간을 거쳐 정식 알바생(?)이 되었다.


그렇게 알바생이 된 지 4개월이 되었다. 이전 직장을 다녔을 때는 매일매일 하기 싫고 괴로웠는데 요즘은 출근길이 즐겁다. 알바를 하지 않는 날에는 심심하고 빨리 알바하러 가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카페 일을 하며 처음으로 알바비를 받은 날에는 눈물이 찔끔 날 뻔도 했다. 내가 하고팠던 카페 일을 하며 돈을 벌다니! 벅차고 꿈같은 순간이었다. 


현재의 나는 직장에 다니며 받던 월급의 1/4밖에 못 벌고 있다. 몇 년간 꼬박꼬박 내던 적금도 못 넣고 있고 청약마저 금액을 줄였다. 받는 금액이 다르니 씀씀이도 달라져야 해서 소비도 줄였다. 하지만 4배 더 벌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끝없이 하고 불안했는데 오히려 알바를 하는 지금, 평안하다. 물론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하고 있고 아예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불안장애를 겪으며 약을 먹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불안은 불안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자아를 찾은 걸까? 진정하고 싶은 일이 카페 일이 맞았던 걸까? 이 질문에는 확답을 못 하겠다. 자격증을 따고 더 경험을 쌓아 지금보다 큰 매장에서 일을 하려는 계획을 실현했을 때는 확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나의 현재 모습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삶이다. 요즘처럼 불안에서 벗어나 평안한 적은 처음이다. 카페 일에 만족하고 있고 생초보인 나를 채용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을 다스려가며 하고팠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자아를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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