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낭만을 소개합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 중 최고의 달란트를 꼽자면 바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달란트'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심심할 순 있어도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정말 좋아하지만 혼자서 즐기는 시간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11월의 첫날부터 나와 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 신간 구경도 하고 궁금했던 책들도 조금씩 읽어 보며 어떤 책을 살지 고민했다. 둘러보는 와중에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포토북을 만났다. 취향에는 어긋난 영화였지만 박찬욱 감독이 그려내는 특유의 서늘한 아름다움이 좋았었다.
책을 한 권 사서 지하철을 타고 연남동 <코코로카라>에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연남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 카페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다.
밖은 아직 할로윈을 보내주지 못했고 안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집에서 연남동까지는 왕복 4시간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남동까지 간 이유는 오직 하나, 이 무화과 치즈케이크 푸딩을 먹기 위해서였다. 무화과 시즌이 지나서 11월 3일까지만 판매한다길래 후다닥 달려갔다. 평일 낮에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푸딩을 먹은 탓에 배가 불렀지만 나온 김에 꼭 할랄 푸드를 먹고 집에 가고 싶었다. 코코로카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질할브로스>에 갔다. 양고기를 못 먹는 나는 치킨 오버 라이스를 주문했다. 핫소스와 할라피뇨를 빼달라고 하는 것을 잊은 바람에 나온 대로 먹었지만 역시나 콧물이 나올 정도로 매웠다.(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매장은 굉장히 협소했고 음악이 나오지 않아 분위기가 많이 적막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벽에는 NO MUSIC NO LIFE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아무래도 NO MUSIC YES LIFE인 것 같았다. 정말, 매우, 고요했다...
힙합이나 락이 나와야 어울릴 것 같은 아트월과 달리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고요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꼬꼬무>를 밥친구 삼아 밥을 먹었다.
퇴근 시간을 피해 후다닥 지하철에 올라타서 강남역까지 가는 시간 동안 교보문고에서 산 책을 읽었다. 홍대입구역에서 강남역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리는데 책을 읽으니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도착했다.
앞서 말했듯이 친구와 만나서 노는 것도 좋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하루를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고 그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아한다. 오직 내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내가 나를 보듬는 방법이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도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으러 왕복 4시간 거리를 망설임 없이 가기도 한다. 북적이는 도시 속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다. 낭만 가득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