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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Sep 13. 2019

혼돈의 카오스, 다낭을 가다.

지금까지 이런 동네는 없었다. 이 곳은 한국인가 베트남인가. 

갑자기 결정한 여행이었다. 너 쌀국수 좋아해 나 쌀국수 좋아해, 세끼 쌀국수 오케이? 그럼 베트남 콜. 마침 지인이 다낭을 갔다 왔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추석 전 주, 비수기라 비행기와 호텔도 쌌다. 백수는 지금 가야 한다!! 우리는 수영복 2개씩을 싸 들고 다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시간은 5시간, 허리가 아파오고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 다낭에 도착한다. 시차는 2시간. 미묘하게 적응하기 어렵다.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한국의 가을 날씨를 두고 무슨 짓을 한 거지. 처음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한국인 대가족과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로 들어간다. 관광 가이드를 맡은 그 집안 둘째 며느리가 큰 목소리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설명들을 덧붙였고, 나와 친구는 대가족 일원이 된 듯 함께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다낭에서 해야 할 40가지 액티비티' 따위를 엮어 놓은 여행 블로그 사이트를 참고해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한마켓. 안 파는 것이 없는 로컬 마켓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막상 가보니 일단 시장으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큰 과제였다. 너무너무너무 사람이 많았다. 장담컨대 95%는 한국 사람들이다. 누가 커플인지 모를까 봐 똑같은 열대 나무 셔츠를 맞춰 입은 남녀를 10쌍은 넘게 본 것 같다. 열대 커플지옥에 빠진 것이다. 


통로도 좁고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에 있으니 숨이 막혔다. 사방에서 나를 보며 "언니, 언니, 땅콩이요"하며 불러 대는 탓에 이 언니는 혼이 나가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견과류를 주로 사는 것 같았지만, 나는 무엇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장을 나와야 했다. 내가 너무 세상을 조용히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길을 건널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오토바이들이 쉴틈 없이 달려든다. 신호등 같은 것은 없다. 경적이 쉴 새 없이 울린다. 다낭 사람들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명상하는 얼굴로 차도를 가로지르고 오토바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잘도 걸어가는데, 우리는 우물쭈물 길을 건너지도 못하고 오토바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소음들을 즐겨야 한다. 오토바이 경적 소리, 건물 공사하는 소리, 호객 행위를 하는 소리의 심포니를 들으며 근처에서 쌀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어딜가나 쌀국수는 맛있다. 식당에서 그랩 Grab으로 차를 불러 바로 호텔로 이동. 그랩은 동남아의 우버 Uber로 여행 필수 앱이다. 호텔에 가는 길에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국어 간판들이 많다. 한국의 지방 소도시 시내를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제주도에 중국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성화이지만, 다낭에 있는 한국 사람만큼 많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면서 일본 여행을 가던 사람들이 다낭으로 행선지를 바꿨다고 했다. 다낭이 가족 단위 패키지 여행의 성지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저녁 8시에 곯아떨어져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다낭의 해는 일찍 떠오른다. 마사지를 2시간 40분 받았다. 아침에 오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이것저것 끼워서 해준다. 누워있기 좀이 쑤실 정도였다. 마사지샵은 한 집 걸러 하나 씩 있다. 많은 추천 수가 있는 곳 Luxury Herbal Spa을 골라간 것인데, 꽤 퀄리티가 좋았다. 


마사지 샵 근처에는 이상하리 만큼 이발소가 많았다. 한국어로 이발소, 귀 청소, 마사지 등이 쓰여 있었는데 굳이 다낭에 며칠 와서 이발과 귀지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당혹스럽다. 한국의 이발 장인들이 다낭으로 대거 이민이라도 오셨나. 입구는 하나 같이 검은색 선탠지가 붙어 있었다. 수상하다. 


롯데마트로 이동했다. 다낭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는 곳으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진정 다양한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서울이 아니라 다낭 롯데마트로 가야 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엄청난 수의 한국 사람들이 '인스턴트 카푸치노 코코넛 커피'와 '인스턴트 쌀국수'를 사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는 곳. 제 각기 자기 지역 사투리로 의사소통을 하며 한 마음으로 같은 물건을 사는 바로 그곳. 보라색 쌀국수 컵라면(2만 3 천동)이 엄청난 인기인데, 한 개 사 와서 먹어보니 참으로 맛이 있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코코넛 커피이다. 아포가토의 코코넛 아이스크림 버전인 듯했다. 카 콩 커피 Ka cong Coffee&Restaurant 이라는 곳을 찾아서 간 것인데, 역시나 우리 동포들이 카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코코넛 우유 슬러시가 일품이었고, 단맛이 강해서 시럽을 빼 달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쌀국수를 먹었다. 마사지를 받고, 해변을 거닐었다. 호텔 수영장은 워터파크 급으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아, 물 반 사람 반이었다. 호이안도 가고, 참 아일랜드도 가야 했는데, 혼돈의 카오스에 빠진 나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가을이다. 가을이 오고 있다. 혼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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