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기억하는 방법
비슷한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조나 힐이 기억하는 90년대의 미국 서부 <미드 90>과, 김보라가 기억하는 94년도 한국의 여름 <벌새>가 2019년 현재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나도 1990년대에 10대의 한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 mid90s, Trailer
mid90s(90년대 중반), 그래서 몇 년도를 말하는 거냐는 질문에, 조나 힐 감독은 연도는 의미 없다고 말한다. 그 보다는 스케이트 보드라는 서브 컬처를 제대로 보여 주고 싶었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극 중 레이 Ray역할을 맡았고, 실제 유명 스케이트 보더인 나켈 스미스 Na-kel Smith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을 하는데, 그 꾸미지 않은 연기가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는 벌새에서도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벌새 trailer
벌새의 시간은 1994년도에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 94년도는 성수대교 붕괴라는 큰 비극이 있었다. 나도 이 사고를 기억한다. 또래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으니까. 이런 허망한 죽음들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 시절 10대였던 우리들은 인생의 많은 것들을 입시 뒤의 시간으로 미뤄야 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만 가면...... 25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벌새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김보라 감독은 그 상징성을 얘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인 벌새는 날기 위해 1초에 80회 이상 날갯짓을 한다. 동물 사전에서 벌새는 생명력, 희망, 사랑을 상징하고, 이것은 주인공 은희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흔해 빠진 폭력이다. 내가 선택한 적도 없고, 버릴 수 도 없는 이 숙명적 관계는 오히려 상처에 취약하다. 영화에서처럼 가족 중 누군가가 생사의 경계에 서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관계의 속성은 잘 변하지도 않는다. 때론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히 절망으로 몰아넣고 마는 이 죽일 놈의 사랑이다.
스티비와 은희의 일상을 따라가며, 과거로 돌아가 10대였던 나를 꼭 안아 주고 싶어 졌다. 그리고 스티비에게는 레이가, 은희에게는 한자학원 선생님이 있었던 것처럼, 10대의 나를 구원해 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1990년대, 같은 시대를 견뎌내고 현재를 살아가는 동지들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
# mid90s, soundtrack
https://www.youtube.com/watch?v=5JV3B47E6oQ&list=PLGNbJXLvRzG0TKAyEt3Y4K1l7GGBqfgZ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