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통을 붙잡고 하얗게 불태웠다.
싱그러운 휴일 전날 밤, 나는 육전을 부치고 있었다. 20여 년 동안 뼈에 새겨진 휴일 전날 밤의 들뜨름한 이 기분은, 어제가 오늘 같은 백수가 되어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신이 난다 신이 나. 나는 타령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레시피를 확인하기 위해 들여다보고 있던 전화기에서 이 문자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22:01 I 알 수 없는 곳에서 내 카드로 653,417원이 결제되었다는 문자였다. 뭐야 이거, 결제가 이루어진 곳은 pension 9. 익숙한 이름이다. 지난 6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묵었던 호텔과 이름이 같았다.
22:10 I 카드사에 전화를 하니, 이미 늦은 시각이라 분실 신고 밖에 되지 않는다. 분노와 걱정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ARS 기계 목소리를 한참 지나서야 인간을 만날 수 있었다. 분실신고를 하면 최근 사용 금액을 알려주고, 본인이 사용한 금액인지를 묻는다. 아니라고 응답하자 비로소 사람과 연결해 준다.
해외 결제의 경우, 카드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단다. 내 생각대로 지난 6월에 묵었던 그 호텔이었다. 호텔에 직접 전화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혹은 영업일, 영업시간 중에 카드사에 전화를 해서 이의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해외 호텔 관련해서는 이의신청을 해도 잘 되는 경우가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것은 하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내일은 마침 휴일이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응원하는 사람이지만, 내 돈은?
22:26 I 스페인 해당 호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잘못된 페이먼트가 이루어졌다고 얘기를 하는데, 주인장은 I don't speak English만 되풀이하면서 예약했냐고 묻는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예약을 안 했는데 지불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또다시 아이 돈 스픽 잉글리시가 이어진다. 이렇게 똑같은 질문과 난 모르쇠 답변이 5회 정도 반복되고 나니, 나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 사기꾼아, 너 영어 하잖아."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더니, 북킹닷컴에서 내가 5박 6일로 예약을 했다는 말을 영어로 유창하게 한다. 난 한국이고 그런 예약을 한 적이 없다고 하니, 업체로는 예약이 들어왔으니 네가 북킹닷컴에 확인해보란다. 이럴 때 뚜껑이 열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다시 같은 말만 반복하는 그 망할 시추에이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럼 내가 북킹닷컴과 확인하고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윌 비 백!! 이 자식아.
22:34 I 북킹닷컴 CS로 전화를 해보는데, 받지 않는다. 아무리 대기를 해도 인간과 얘기할 수는 없다. 전자지갑에 신용카드 정보를 남겨 둔 것이 화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개인정보 보호 불감증에 걸렸다며 나를 탓하기 시작하다. 일단 정보를 삭제했다. 눈에서 불꽃이 나오고 있었다.
22:37 I 해외 결제 취소 문자가 왔다. 휴...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게 왜 일어난 일인지 궁금했다. 북킹닷컴 홈페이지의 피드 백란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북킹닷컴에 전화했다. 지루한 기다림, 마침내 연결이 되어, "사람" 목소리를 들렸을 때는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명상이 필요하다.. 지지 않아. 다시 전화를 하고 기다린다. 해외 연결이라 접속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이건 말인가 똥인가. 연결은 되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들을 수 없다.
메일로 회신을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런저런 페이퍼를 요구하면서 처리를 지연하고 있다. 북킹닷컴은 환불이 힘들기로 악명이 높았다. 나의 관대함도 이제 한계다. 나는 조금 집요해 지기로 한다. 어떤 식으로 결제 처리가 되었는지 알아낼 때까지 계속 고객 센터와 얘기할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플랫폼에 지불 관련 결제 정보를 남겨 놓도록 하고 있다. 중요한 정보이지만, 그 업체들이 보안에는 그다지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해외 사이트들은 결제할 때는 친절해 보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나몰라라로 돌아서기 십상이다. 나도 이번 일을 겪고 지불 관련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신용카드를 재발급받았다. 갑작스럽게 얻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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