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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06. 2019

계화 씨의 불면증

It's your time to shine 

계화 씨의 강산은 일곱 번도 더 바뀌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누구나 한 번쯤은 되뇌고야 마는 숙명적 한탄이다. 아직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다 늙어 버렸네...... 


계화 씨는 몇 년 전에 바리스타가 되었다. 시니어 센터에 바리스타 준비 과정이 생긴 것을 보고 딸이 권유했다. 서류와 면접 전형이 있는 꽤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첫 회사를 결혼과 함께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으니, 면접은 40년 만이다. 계화 씨는 첫 면접을 앞둔 취준생처럼 떨림/두려움/설렘이라는 감정의 트리플 악셀을 돌면서 합격을 다짐했다. 내가 바로 김연아다. 


당당히 과정에 들어가게 된 계화 씨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바리스타 시험 필기를 공부할 땐 듣도 보도 못한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머리가 아팠다. 왜 이렇게 안 외워질까. 머리를 싸매고 앉아 낡아가는 뇌를 채찍질했다. 자식을 셋이나 낳고 70이 다 돼가는데 이 정도면 괘안타.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젊은것들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6개월 동안 준비한 시험에 합격하고, 바리스타가 되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계화 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돈도 벌고 싶다. 도시락을 하루에 6개씩 싸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폐암 진단을 받은 남편의 병시중도 들었다. 장남의 아내로 40년을 때마다 제사를 지냈고, 8 남매 동생들도 챙겨야 했다. 그땐 다 그러고 살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변했다고 한다. 


계화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시니어 센터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올해 70이 되어서 바리스타 할머니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이다. 계화씨는 행여 더 늙어보일까봐 신경이 쓰인다. 안 하던 머리 염색도 하고 옷도 젊게 입었다. 월급을 타서 남편 옷을 한벌 해 주고, 가족들에게 저녁을 샀다. 쪼끼쪼끼에서 동네 친구들에게 한 턱 냈다. 돈이 이래 좋다. 월급을 탕진한 계화 씨는 행복했다.


계화 씨는 원래도 바쁜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 놓고, 20년을 호스피스 봉사자로 병원에 다녔다. 적십자 봉사자로 동네 할머니들을 돌본다. 덜 늙은 사람이 더 늙은 사람을 돌보는 시스템이다. 성당에서는 연령회 회장으로, 장례식을 챙기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계화 씨의 삶 속에 죽음이 스며들어 삶과 하나가 되었다. 


계화 씨는 요즘 잠이 오지 않아 걱정이다. 생각이 많다. 죽음이 눈 앞에 와 있는 듯한데,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다. 죽음이 삶으로 들어와서, 삶에 대한 욕망은 더 커졌다. 나에게 앞으로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 계화 씨는 시간이 아쉽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서 가슴이 떨렸다. 늙어서 주책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계화 씨는 열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대구 시내에서 학교를 다니며, 혼자 하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직장에 다니고 있던 큰 언니가 직장과 하숙집을 오갔다. 계화 씨는 꿈에도 한번 나타나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고 그리워 밤마다 울었다. 


네는 엄마가 있으니 얼마나 좋노. 내는 엄마가 너무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아이가. 

엄마는 딸이 있어 얼마나 좋아요. 나는 딸도 없어 나중에 어쩌우. 


계화 씨와 딸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부럽다. 계화 씨의 딸은 이제 모아야 할 돈은 다 모았다며 직장을 때려치웠다. 결혼을 못한 것이 흠이지만, 좋은 직장 다니는 착한 딸로 계화 씨의 자랑이었는데, 몇 달 전 돌연 동네 백수로 전락한 것이다. 허구한 날 조카를 붙잡고 방구석에서 춤이나 추고 있는 사십 넘은 딸년이 계화 씨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어서 답답했다. 아이고, 저 젊음을 저래 썩히고, 우얄꼬... 계화 씨의 불면증이 깊어졌다. 


계화 씨는 한의원에 다닌다. 침을 맞으니 좀 나아지는 것 같다. 딸이 숙면에 좋다며 감태환을 보내 주었다. 여전히 불면의 밤들이 있지만 지루한 책을 읽으며 잠의 여신을 불러본다. 내일도 할 것이 많다. 어렵게 잠이든 계화 씨에게 "계화 씨의 전성기"가 찾아와서 속삭였다. 


계화 씨, 이제 계화 씨가 빛날 차례예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요. 딸의 인생은 딸에게 맡겨두고, 한번 사는 인생 재미지게 살아보자고요, 우리. 


계화 씨의 코 끝이 찡긋거렸다. 




Photo by Patrick Brinks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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