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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09. 2019

가장 보통의 연애

알콜성 치매와 연애의 상관관계 

나는 술을 좋아한다. 아니 과거에는 정말 많이 좋아했다. 공효진과 김래원의 '가장 보통의 연애'를 보면서, 그 많은 술을 마시고도 (상대적으로) 많은 연애를 하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이 정도 마셨으면 한 1000 명하고는 썸이라도 탔어야 하는 거 아냐? 같이 본 친구에게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 밀려오는 씁쓸함은 뭘까. 


나의 주력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다. 술을 먹고 주사를 부렸다면, 그것도 엄연한 민폐다. 가장 보통의 연애를 보면서, 가장 불편하게 느꼈던 것이 그런 부분이었다. 가장 보통의 주사들. 그리고 그것을 '그래, 술 먹으면 그럴 수 있지'로 넘기는, 혹은 넘겨줘야 한다고 말하는 그 알 수 없는 관대함. 혹은 이로써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그 망할 놈의 연대감.


나도 필름이 끊긴 기억들이 있다. 당시 나의 회기 본능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보는 꽐라의 상태에서도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락을 받고 밖에 나와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택시비를 지불하시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몰토크를 하며 어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나는 아마 들어가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가 뻗은 모양이었다. 잠이 들었나 보러 들어온 어머니를 향해 벌떡 일어나, "기사님, 얼마예요"를 외쳤다고 했다. 어머니는 쇼크가 상당했다. 네가 이제 미쳤구나. 네가 미쳤어. 나는 아침에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이 참 예의 바른 아이라고 생각했다. 


필름이 자주 끊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알콜성 치매로 이어질 확률도 크다. 그냥 '술 마시다 보면 그럴 수 있지'로 넘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위험하게도 이것은 종종 로맨틱하게 포장되곤 한다. 필름이 끊긴 후 자다가 일어나 봤더니 내 옆에 김래원이나 공효진이 누워있을 확률은 글쎄..... 김래원이 공효진 옆에 누워있을 확률은 뭐.. 클 수도 있지. 얼마 전엔 임수정 옆에 장기용이 누워있고, 천우희 옆에 안재홍이 누워 있더구먼. 술을 안 마시면 정말 연애를 시작하긴 힘들어지는 건가. 도대체 얼마나 더 마셔야 되는 거니.  

공효진도 김래원도 원래 본인들이 줄곧 해왔던 연기를 하기 때문에, 어색함이 없었다. 김래원은 꼭.. 그렇게.. 해야만.. 했냐... 으허허허헉을 언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고, 공효진은 뭐, 억울한 표정에 종알종알 얘기하는 모습이 딱 그냥 공효진. 


카톡 화면이 꽤 재밌었는데, 존조의 서치(Searching, 2017)에서 페이스 타임 활용이 주었던 신선함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매우 흔한 스토리이지만, 카톡 대화가 들어가니 더 개인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카톡에서 1이 지워지지 않는, 그 '혼자만 떠들썩한 침묵'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 이건 그냥 내 얘기인가...... 뭐해?, 자니? 좀 써봤던 인간들은 뭔지 안다. 


지가 꼰대인 줄은 지만 모르는 꼰대들, 일은 안 하고 남 얘기하느라 메신저 질만 바쁜 잉여들, 술주정이 민폐이고 범죄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쌍것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상시로 날뛰는 보통의 회사에서 일어나는 연애. 그래서 '가장 보통의 연애'를 하게 되는 85년생 남녀의 사정. (아... 그 나이에 뭘 못하겠니) 



Photo by Adam Wil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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