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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11. 2019

엉덩이 탐정과 한국적 동화책

선택적 노저팬 운동에 관하여

조카가 '엉덩이 탐정'에 푹 빠졌다. 이 엉덩이 탐정님은 얼굴형이 복숭아 같은 엉덩이 뒤태 모양인데, 그러니까 입이... 그거다.. 헬로 키티 같은 거다. 입이 없어 내가 나의 감정을 너에게 대입시킬 수 있고, 나의 기분은 아몰랑... 그런거. 


아직 5살인 조카는 어제 유치원에서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차 차차차'를 배웠다고 했다. 꽤나 기합이 들어간 한국어였다. 웬 '차'를 그리 많이 배웠어. 춤 이라도 출 기세로구만. 조카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냐. 두 팔을 딱 벌려. 눈을 감고 해 봐. 이렇게 해봐.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헤헤 으헤으헤으허허. 해봐. 그 뒤로는 물론 가나다라 따윈 없어지고 으헤으헤만 메아리치는 대화가 이어졌다. 송창식 선생님께 바치는 오마주다.


이 정도 국어 실력으로는 엉덩이 탐정 책에 나와 있는 글자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지만,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그 책을 또 보고 또 보고, 매일 엉덩이 탐정 얘기만 한다. 퍼즐을 맞추며 범인을 찾는데 월리를 찾아라의 아이 버전 느낌이었다. 나도 재밌네. 


조카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서점에 갔더니 아예 엉덩이 탐정 코너가 있다. 입구 앞에서 부터 우와, 엉덩이 탐정이다. 라며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엉덩이 탐정 인형, 보드 게임, 구구단 외우기 등의 오프라인 상품들도 입이 쩍 벌어지는 가격으로 나와 있었다. 몇 만 원씩 주고 이걸 사야 하다니. 이건 거의 라인 프렌즈 인형 값이네. 친구인 줄 알았는데 가격이.... 


와, 돈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구나. 우리는 유나의 똥 방귀 얘기를 맨날 듣고만 있었지 이렇게 이야기로 써서 돈을 벌 생각은 못해봤잖아.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그저 귀를 더럽히고 있을 때, 이 사람들은 그것을 창작과 사업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대단하군. 나도 이런 걸 해야겠어. 


조카에게 이모가 '엉덩이 탐정'과 비슷한 것을 써 보려고 하는데, '방귀 형사'가 어떻겠냐고 했더니, 조카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중에는 반드시 '코딱지'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똥방귀 형사'와 코딱지 마을이 탄생했다. 


엉덩이 탐정은 사건을 해결할 즈음 방귀를 뀌는데, 우리 똥방귀 형사는 똥을 싸는 것으로 내용을 바꿔보았다. 조카는 이미 너무 웃기다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성공 예감.


엉덩이 탐정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 보니, 본래 일본에서 나온 책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범인은 (웬일인지 매번) 이 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어리고 진지한 명탐정 코난과,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역전재판의 병맛, '울라울라'의 못 말리는 짱구를 적당히 섞어 엉덩이 탐정이 나온 건가.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과장된 세팅이 일본스럽기도 하다. 


토로루라는 펜네임(실제로는 2명의 작가의 콜라보다)을 가진 작가가 원작이고, 포플라라는 출판사를 통해 2012년에 처음 공개되었다. 최초 3-5세를 타깃으로 시작해, 초등학생용까지 범위를 확장했다고 한다. 올해 5월까지 일본에서 누적 600만 부가 팔렸으니 꽤 주목받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어, 그런데 '일본'이라는 키워드는 우리가 한번 걸러 줘야 하는 키워드라고 알려져 있다.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면 매국노가 된다. 일본 맥주? 절대 안 되지. 유니클로와 아사히는 일견 이해가 된다. DHA 같은 편의점 화장품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우익단체 지원 기업들이었으니, 이제라도 사람들이 안 쓰는 것이 잘된 일이다. 


아사히나 DHA는 대체제들이 많다. 그런데, 유니클로는 좀 다른 것 같다. 의외로 주변에 유니클로 생활자들이 많았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의류를 유니클로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대체제라고 이런저런 한국 업체들이 알려졌지만, 이것은 습관의 문제인지, 아니면 진정 퀄리티와 가격의 문제인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저 한국 기업의 것이기 때문에 소비하는 시대는 아니다. 유니클로가 없다고 벌거벗고 다닐 일은 아니지만, 불편함이 커졌다고 했다. 간절기라 더 그렇다. (아, 그런데 유니클로는 이제 답이 없다. 광고를 그 따위로 내 보내는 건 한국에 대한 분명한 도발이다-10/21) 


그럼 조카에게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과 일본의 대치 상황과, 그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와.. 그래서 왜 이 엉덩이 탐정을 봐서는 안되는지에 대해서. 아 이것은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일본이 뭐야'로 시작되는 질문은 답변할 자신이 없다. 


내가 얼른 똥방귀 형사를 써서 조카의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렇다면 '똥방귀 형사, 홍길동'으로 책이름을 정하는 건 어떨까. 한국적인 이름이다. '순수 토종' 동화책. 애국 마케팅을 시도한다. 애국 마케팅을 시도해서 한국 사람인 사장(바로 나다)만 배부르게 만든다. 홍길동은 똥을 똥이라 부르지 못하고 방귀를 방귀라 부르지 못한다. 율똥국을 세워 태평성대를 이루고 동화책은 끝이 난다. 


생각이 춤추고 있다. 형사가 꼭 남자라는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똥방귀 형사 김지영과 82년 된 코딱지 마을. 한국에서 어린이와 어른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제목으로 탄생한 이 동화책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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