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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29. 2019

신문기자新聞記者

이 영화를 보고 혼자 술을 마시러 갔다. 

꽤 무미건조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심은경이 나오지 않았다면 극장까지 가서 보는 수고를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감독의 이름(후지이 미치히토 藤井道人)은 처음 들었는데, 필모그래피를 보니 눈에 익은 작품이 몇몇 보인다. 


영화는 단 한 번의 웃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블랙유머도 없다. 이렇게 시종일관 진지함과 긴장감을 유지하는 영화는 오랜만에 본다. 영화관에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 정도가 있었는데, 한 명이 중간에 나가버렸다. 


일본판 포스터 

일본 현지에서는 지난 6월 28일에 개봉해 큰 주목을 받았다. 국회 의사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포스터 자체로도 무엇인가 단단히 벼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치를 테마로 이 정도까지 흥행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류의 영화가 제작된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상영 한 달 동안 흥행수입이 40억 원 정도였고, 33만 명이 보았다. 손익분기점이 30억이었다는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극장과 지역을 바꿔가면 개봉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상영 중에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정부 권력층의 비리와 뉴스 조작, 내부고발과 이를 파헤치는 신문 기자의 스토리다. 우리에게는 속칭 기레기로 대표되는 권력의 끄나풀 정도 되는 기자들도 있고, 단지 진실을 알리 겠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버리는 기자들도 보이는데, 늙음/기득권 층 vs. 젊음/잃을 것이 없는 층의 대결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순환이라면 저 젊은 기자들도 결국 기득권층 늙은이가 되고야 마는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소리로 이해될때 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영화는 동명의 논픽션을 기반으로 하는데, 원작자는 동경신문 사회부 기자인 모치즈키 이소코 望月衣塑子로,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반 아베 정권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도 텔레비전 속 대담자 역할로 특별 출연하여 자신이 집필한 저서들('신문기자新聞記者, '동조압력同調圧力', '권력과 신문의 대문제権力と新聞の大問題')을 바탕으로 영화 속 이슈들에 대한 논평과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기자를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기자보다는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 나라에서 기자란 베껴쓰기 스킬이 출중한 자 정도 되는 거 같다.   


감독은 이 영화의 개봉 자체가 아베 정권에 대한 고발이라고 말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사이에서는 이것이 픽션인가 아닌가를 두고 찬반토론이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다루는 세 가지 이슈들(여기자 성폭행 미투, 사학비리 등)이 모두 현실에서 있었던 사건들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야후 재팬 무비를 보면 리뷰가 470여 개 올라와 있는데 주로 영화 자체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나누어지고 있었다. 


[긍정적 리뷰는 현실 고발에 대한 공감과 현재 정부에 대한 비판 ] "현재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 "현재의 일본은 위험하다.",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부정적 리뷰는 정부에 대한 잘못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음을 염려 ] "이 모든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거짓말 투성이, 시간과 돈이 아깝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내용이 꼭 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했나"라는 리뷰였다. 국가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일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타 부정적 리뷰는 주로 여주인공이 왜 한국사람이어야 했나] 일본인이 아니라 심은경 씨가 맡은 것이 불편한 사람들도 보였다. "왜 한국인을 영웅으로 만들려 하는가" 하는 리뷰가 대표적이다. 심은경 씨 발음 때문에 몰입이 힘들었다는 리뷰도 종종 보인다. 


나는 국뽕의 영향인지 이 배역(요시오카 에리카)을 심은경 씨 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일본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나도 시작 지점에는 왜 심은경일까 싶었는데, 일본인 언론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는 설정에서 일견 납득이 되었다. 


현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많은 여배우들이 출연을 고사해서 심은경 씨가 출연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전후 수십 년 간 자민당 1 당체제를 이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에서 아베 정권의 지지층은 매우 견고하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돼
この国の民主主義は形だけでいいんだ


이 대사를 들으면서 명치 부근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 일본 사회를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우리도 "이 나라 국민들이야 개 돼지"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놈은 아직도 버젓이 공무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아픈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지독하고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네 사람밖에 없었던 극장에서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와중에 누구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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