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ed to Mr. Cha?
1994년,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 150권을 독파하고 여고생이 된 나는 만성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중/여고를 거치며 남자라고는 씨가 마른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환상 속의 그대로만 존재하는 이 남성이라는 존재를, 아.... 나는 얼마나 갖고 싶었던 것인가.
'사랑을 그대 품 안에'는 바로 이 시절, 나의 마음/너의 마음/우리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 정통 로맨스 드라마다. 줄거리는 할리퀸 로맨스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1) 인성 말고는 다 갖춘 재벌 2세와, 2) 얼굴밖에 가진 것이 없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캔디류의 독립적인 여성이 3)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둘만 모르다가 4) 밀당 전쟁을 벌이며 두 번의 이별 고비를 넘기고 5) 극적으로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대형 백화점 이사 재벌 2세 남 차인표 씨의 당시 인기는 대단해서,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오토바이, 색소폰, 목에 찬 큰 목걸이 등이 잘난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추앙받았다.
차인표 씨는 그 뒤로 극 중에서 만난 신애라 씨와 결혼하며 모범적인 연예인 가정의 스탠더드가 되었는데, 이 것이 바로 "차인표"라는 영화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이미지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는 배우 차인표.
나는 원래 병맛 코미디를 즐겨 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며 매우 즐거웠다.확실히 영화 "국제수사"를 볼 때 보다 훨씬 많이 웃었다. 김보성의 "의리" 만큼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차인표 씨의 키워드 "진정성"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만 하다. 도대체 이 망할 놈의 진정성이라는게 뭐냐고요.
영화를 보고 차인표 씨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예전의 멋있음과는 거리가 멀지만 미키 루크만큼은 아니다. 할리 데이비슨을 탄 나인 하프 위크의 미키 루크 씨는 역변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우리 차인표 씨는 관리를 잘했어. 마른 근육의 몸매와 멸치 얼굴은 피할 수 없는 트레이드오프일 뿐.
이 영화 덕분에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다시 찾아 보며 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했다.
1997년, 나는 드디어 공식적인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첫 번째 단체 미팅. 웬일인지 앞에 앉은 5명의 남학생 중 3명이 한쪽 눈을 머리로 가리고 있었다. "별은 내 가슴에"가 만든 풍경이었다. 앞이 잘 안 보여 음료수도 흘리며 마시던 그 찐따 같은 놈들도 대망의 2021년을 맞이 했겠지.
2편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