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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Mar 14. 2021

고독한 도시의 밤

혼자 살아 가는 일에 대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늦은 전철 안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로 빽빽했던 공간이 덜컹거리는 소리만으로 가득 차고, 움직이는 이 세계에 숨을 쉬는 것은 나뿐이다. 


종착역에서 집을 향해 걸어가는 길, 손님들이 다 떠난 상점가를 지난다. 뒷정리를 하는 점원들의 어깨 위로 겹겹이 눌어붙은 피곤함이 나의 고단했던 하루와 겹쳐 보인다. 


'따따따따따  따라라'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지만, 반겨 주는 사람은 없다. 대신 현관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갑작스러운 암흑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얼른 신발을 벗고 거실 불을 켜야 한다. 어둠을 피하는 방법. 하루 중 가장 민첩해지는 순간이다.  


13층, 내 집 창 밖으로는 수 천 개의 규격을 맞춘 창문들이 줄을 지어 있고, 밤이 되면 불 켜진 그 사각 프레임 너머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다른 차원 속에 존재하는 듯 닿을 수 없는 다른 빌딩 속의 사람들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타인의 뒷모습보다 더 아득하다. 

그들의 삶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어떤 날은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저 생명체와 눈빛을 교환하고 안부를 묻고 싶어 진다. "잘 지내는 거 맞죠?" 


혼자 살아가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의 변주다. 


고독이란, 퇴근해 돌아와 잠옷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시작되는 나의 이중생활. 좋아하는 음악에, 안주에, 술을 홀짝 거리며 혼자 춤을 추는 시간. 만화책을 30권씩 쌓아 놓고 밤새워 맥주를 마시며 낄낄 대는 미친 여유. 어느 새벽 혼자만이 깨어 있는 그 시간, 고요함 속에 책을 읽다 인생 문장을 만나는 가슴 떨리는 사건. 그리고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장황한 고민. 그 방해 받지 않는 침묵 속에서 100%의 나를 만나는 것. 


그러나 외로움이란, 내일 죽어도 며칠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불안감. 당신의 부재로 오는 감정적 결핍. 숨소리만 가득한 차가운 공기. 마땅히 할 말은 없는 수많은 카톡 상대들. 이 세상의 행복과 화려함은 모두 차지해 버린 인스타의 타인들. 어쩌다 이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하는 자책과 후회와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그래서, 결국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두려움. 


비슷하면서 다른 이 사유의 흐름이 반복된다. 고독과 다르게, 외로움을 고백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독은 혼자라는 만족감에서, 외로움은 혼자인 결핍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때때로 굉장한 예술적 영감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저 술을 퍼마실 이유라던가, 쓸데라고는 없는 상품의 영업 대상이라거나, 죽음에 이르는 망상이나, 로맨스 피싱 같은 범죄로 연결된다. 


그러나 내 삶의 외로움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고독하고 외롭다. 우리의 삶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이유는 내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차 때문일까.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작사 조동희 / 작곡 조동익 / 노래 장필순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 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줘 


고독한 도시의 밤이 지고 있다. 

어김없이 내일 밤이 찾아오고 외로움이 느닷없이 나를 불러도, 뭐 어쩔수 없지.  

질질 짜면서 맥주나 마셔야지.  




Photo by Marcus  Castro on Unsplash

Photo by Scott Webb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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