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vs불안]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으이그, 바보야.”
친정 엄마는 온몸이 부어 누워 있는 내가 눈을 뜨자마자 힘 빠진 손을 아래위로 쓰다듬다 툭툭 치기도 하면서, 말했다.
“왜? 제왕절개를 했어?”
“니는 애 낳으면서 가까이 있는 엄마한테 연락도 안 하나?”
연이어 쏟아지는 질문인지, 푸념인지, 반어인지 모르는 엄마의 말이 들렸고, 신랑은 옆에서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
한 옥타브쯤 더 내려간 저음 톤에 쩍 갈라지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다시 입을 열어 보았지만, 호스 바람 빠지는 소리가 휘휘 나오는 것 같았다. 힘을 더 주고 말을 하자니, 배가 찌릿 아파왔다.
목젖을 낮게 깊숙이 깔고, 턱을 쭉 내려, 힘을 빼고 물었다.
“괜찮아요?”
바람소리가 세세 들리는 무성음.
목이 따끔할만한 목소리는 아니었는데, 목이 아팠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신랑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까 궁금했다.
신랑은 시뻘건 눈으로 고개를 끄덕했다.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건지,
괜찮은데, 눈은 왜 시뻘건지,
표정은 왜 착 가라앉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야들은 희한해요. 애 낳을 때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 낳고 그리고 딱 연락하고. 우리가 옆에 있은 들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만 탔을 텐데, 아이고, 대단타.”
“뭐가 대단해요? 응? 지가 고아도 아니고, 20분 거리에 있는데, 그걸 왜 얘기를 안 하는지.”
두 개의 다른 음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소리는 계속 재생이 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스피커가 늦게 켜진 것 같았고, 다시 눈을 떴다.
먼발치 문 입구에서 서성이는 친정 아빠가 보였고, 시아버님이 보였다. 그리고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이어 가지만, 결국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친정 엄마가 있었고, 시 어머님이 있었다.
그 사이 침대 끝에 신랑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눈이 땡글땡글하다고 했다.
뱃속에 있는 41주 6일 동안 괜찮은지가 궁금했던 아이는 괜찮았다.
임신 30주쯤부터는 밤마다 쥐가 났다. 종아리 쪽 근육이 갑자기 딱딱해지고 굳어져 끊어질 듯이 아팠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꺅 소리 지르면, 옆에서 자던 남편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내 발을 90도로 세워 들고 발바닥을 천장 쪽으로 쫙 젖히고는, 꾹꾹 눌러주었다.
임신 41주가 넘도록 진통은 안 느껴졌다. 형광등 불빛이 안 보일 만큼 앞이 캄캄해지는 통증이 있는데, 그게 진통이라 했다. 배가 축 처지고, 허리가 뻐근한 느낌은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임신 41주쯤 되는 날부터는 밤마다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아파왔지만, 주기적으로 진통이 짧아지며 병원에 가야 할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임신 41주 5일 되던 날,
야간 진료 넘어가기 전 진료를 보고, 출산 전 만찬을 즐기기러 했다.
의사는 40프로가 열려 진통이 진행되고 있는데, 몰랐느냐 했고 바로 출산해야 한다고 했다.
분만실 입구 여러 개의 침대 위. 그중 2-3개의 침대 위에는 출산을 기다리는 예비 맘들이 누워 있었다.
배가 고팠다.
곧 의사는 여러 장의 종이를 들고 신랑과 나에게 와서 물었다.
신랑이 탯줄을 자르는 것은 꼭 하고 싶었고, 나머지는 다 안 한다고 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주의 사항을 말하고, 재차 확인하고 동의서를 받는 내내, 간호사는 물었다.
“왜 무통 주사는 안 맞아요?”
임신 41주 6일 동안 임신, 출산, 육아를 노란 책을 교재로 하고 예비 맘들이 가득한 인터넷 카페에서 공부했다. 출산 파트에서는 자연주의 출산이 좋았고, 물에 익숙해져 있는 태아를 위한 수중분만도 신기했다. 내 몸에 약이 들어가고, 약의 느낌으로 몸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서웠다.
“지금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서, 나중에는 선택 못해요. 무통 안 할 거예요?”
마지막에 물어볼 때는 저 말에 대답하기 싫어서라도 맞는다고 할까 하다가, 진짜 최종으로 묻는 느낌이라 그냥 안 맞는다 했다.
1인실 조용한 방으로 옮겨졌다. 내 뱃속 진통이 그래프로 바로 찍히는 기계가 침대 옆에 있었다. 밤새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르륵 잠이 들다 그래프가 확 꺾이는 순간 다시 눈을 뜨고, 깜빡 눈을 감았다가 그래프가 확 꺾이는 순간 다시 눈이 떠졌다. 나중에는 그래프가 확 꺾이는 순간을 미리 짐작하고 두 손을 꽉 움켜쥐고, 아플 준비를 했다. 온몸을 휘감는 공포, 두려움으로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나면, 온몸 전체에 싸하지만 강한 아픔이 전해졌다. 14시간 동안 라디오를 흘려들으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폈다 했다.
라디오 속 목소리는 출근길 신나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고, 신나는 음악들이 나왔다.
부스스하지만, 하얀 가운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쁘게 들어왔다.
힘을 주라고 했고, 두 다리를 움직이기도 했다.
양다리를 벌리고 상체를 숙이는 동작을 제일 못하는 나는 출산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두 다리를 찢는 동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반복했다.
입구가 좁아 아이의 얼굴이 돌아 나올 수가 없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 했다.
내 다리가 잘 찢어졌다면, 입구가 넓어졌을까?
저녁으로 고기를 빵빵하게 먹고 누워, 힘을 주었다면, 자연분만 할 수 있었을까?
바로 차가운 수술대 위로 옮겨졌다.
하얀 불들이 하나 둘 켜졌다.
너무 추웠다.
온몸이 발가벗겨 진채로, 수술대 위에 누워 있고, 간호사들은 지금 상황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참다못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어서 소리 질렀다.
“시끄러워요. 그만 좀 해요”
조용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어떻게 도와달라는 말을 예의 바르지만, 정확하게 하고 싶었는데, 그 외침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속 모든 전원이 꺼졌다.
“미영이, 괜찮아요?”
신랑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괜찮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건강하대요.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예요.”
꺼이꺼이 숨 넘어가는 소리에 신랑의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의사도 아이는 건강하다고 덧붙였고, 마취에서 깬 나를 확인하고는 돌아갔다.
어린 신랑은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인 건강한 복덩이를 만났고, 그렇게 어린 아빠가 되었다.
이틀쯤 지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엄마가 젊으니 회복도 빠르다고 했다. 창 밖에서 아들을 보는데, 그렇게 궁금하던 손가락 발가락은 볼 수 없었다. 하얀 싸개에 쌓여 얼굴만 빼꼼히 있는 아이는 형광등 불빛이 마음에 안 드는지, 살짝 찡그린 것 같기도 했다. 어린 신부는 드디어 어린 엄마가 되었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인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배웠다.
그리고 인간의 손가락이 10개, 발가락이 10개. 건강하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