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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맘만 Aug 11. 2023

이제는 혼자가 좋은 아이

정말 힘들었던 때가 이제는 그립고, 바라던 날이 왔는데 외롭다.


그리운 나날들?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배가 꿀럭꿀럭 거리는 일이 유독 많았다. 태어난 아들은 에너지가 많았고, 주위 물건이나 상황에 호기심이 많았다. 심심하고, 지루한 상황을 못 견뎌 했다. 


반면, 나는 집순이다. 외출을 하면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하루 이틀은 푹 쉬어야 다시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그렇다 보니, 외출 시 할 일을 모아서 같이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외출하는 일이 더 피곤해지는 에너지가 바닥인 날들이 많았다. 


어린 아들과 함께 집에 있으니, 혼자 있으면 그렇게 잘 가던 시간이, 좀처럼 가지 않았다. 집에 있는 놀잇감을 바꿔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야외로, 날씨가 흐린 날은 도서관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 실내로 나가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방학마다, 날씨 좋은 평일 오후에도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집에 있을 때 보다 시간이 훨씬 잘 갔다. 날씨 좋은 날 야외에 있으면, 기분도 좋아졌다. 집에 있으면, 바쁘고 할 일이 많아 마음이 무겁고 여유가 없었지만, 밖에 나가니 오히려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가끔 식사 시간을 놓치거나 컨디션이 바닥일 때면, 가족 모두가 짜증 가득 했기 때문에 식사, 잠자리,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들을 우리의 바깥 외출에 꼭 넣었다.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장소는 차안이나 도서관이었다. 이동 중에 아이가 잘 수 있게 여행 코스를 짰다. 나중에는 아이가 차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바람 부는 시원한 곳에 바다나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매트를 깔아서 쉴 수 있게 했다. 나중에는 이 차에서 1박 2일 잠을 자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낚시꾼들에게나 인기 있던 차박이었다. 요즘은 캠핑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박을 하는 것이 TV 로 소개 되어 나오면, 우리는 차박 여행의 원조는 우리였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신랑은 어디를 가든 매번 사진을 찍었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그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를 했다. TV에서 우리가 여행간 장소가 나오거나 이야기가 나오면, 신랑은 꼭 그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거기서 소떡소떡 먹었지 않았나?” 

“아~ 나 거기 생각나.”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자막을 넣어 가족 여행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사진들이 쌓이고, 사진을 찍은 위치들이 점점 넓어졌다. 아이의 생일 때마다, 아이의 1년 동안의 사진을 모아 포토북을 만들었다. 포토북 속 사진 장면 역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어떤 책보다 더 손때가 묻어있고, 이 포토북은 누구나 좋아하는 우리 집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가까운 공원에서 시작했던 외출이, 우리 지역 근교로 넓어지고, 3-4시간 떨어진 원거리 여행도 가능해졌다. 나중에는 이렇게 매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한군데서 오래 있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기 위해 떠났다. 그 당시는 한 달 살기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다들 제주도에 한 달 씩이나 가서 뭘 하냐고 물었다. 집에서 지내는 것처럼 똑같이 지냈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밥을 먹고,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책을 읽었다. 어느 날은 집에 콕 박혀서 책만 읽고, TV만 보았다. TV 속 광고도, 마트에 누워 있는 물건도, 도서관도, 동네 놀이터도 조금씩 달랐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새로웠고, 특별한 나날이었다. 그 새로움이 익숙해질 무렵,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다시 집 주변, 집안에 있던 장난감들이 새로웠다. 아이는 그 새로움 속에서 한참을 보냈다. 


키즈 카페, 놀이터, 지역 축제, 놀이공원이나 직업 체험 테마파크 등 낯선 곳을 가게 되면 아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쭈욱 빠르게 전체적으로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뭐든지 다 하고 싶다고 했고,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기를 갖다 댈 때마다, 다른 표정으로 다른 동작으로 신나게 자신을 표현하는 멋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눈이 다른 쪽을 볼 때도 있었는데, 빨리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어서 주위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재잘 재잘 이야기를 하거나, 끝말잇기, 숫자 놀이 등을 하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간식을 먹고 간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본인이 여행코스를 짜보겠다고, 맛집을 검색하고, 관광지를 조사해서 가이드가 되기도 했다. 바다가 보이면 물에 풍덩 들어갔고, 모래가 보이면 모래놀이를 했고, 놀이기구가 보이면 달려갔다.




외로움의 시작인가? 


“엄마, 엄마” 

낮이면 쉴 새없이 이야기했다. 밤이면  “같이 자고 싶다.”고 이야기 하던 아이가 자라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달라졌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더 신나했다. 자기 방을 자기가 직접 꾸미기 시작했는데, 꾸민다기 보다는 동굴을 만드는 느낌으로 방을 설계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이불로, 베개로, 책으로 몸 하나 쏙 들어갈 공간을 만들더니, 이제는 방에 있는 책상으로, 침대로, 책상으로 자기 몸 하나 들어갈 제법 안정적인 자리를 만들었다. 


코로나 19로 초등학교 졸업식은 아이들만 참여하는 졸업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6년의 초등학교 생활을 정리하는 자리니,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교문 밖에서 기다리다 사진 찍고, 함께 식사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 졸업식에 못갈 꺼 같아. 괜찮겠어?”

“응, 엄마. 괜찮아.”

아직도 엄마로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못해서, 미안해서 건네는 말에, 아들은 세상 쿨 하게 받아쳤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때가 있었다. 엄마는 빨리 아이를 키워서, 엄마도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고 싶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싶었다. 아이 때문에, 아이가 어려서 못한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서,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우리 아이는 뭘 하고 있을 까 생각했고, “엄마” 라는 소리만 들려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엄마 시간의 전부였고, 엄마는 아이만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도 아이에 따라 시시각각 움직였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고,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외출도 아이 혼자 할 수 있고, 혼자만 집에 있을 수도 있게 되었다. 스스로 간단한 음식도 해먹을 수 있다. 이제 하루의 시간은 스스로가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 


엄마는 아이와 마주 앉아 엄마가 먹을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서 엄마 입으로 가져 가고, 화장실 용변도 문을 닫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학원, 친구 집, 놀이터로 외출한 시간이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마트에 가서 그날 사야하는 것만 생각하고, 딱 맞게 사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주말 한 끼 정도는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은 각자 해결하게 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돌아오는 삼식이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린이 집으로 유치원으로 초등학교로 마침내 중학교까지 아이는 세상 속으로 한발 한발 들어가는 중이다. 아이가 돌 무렵, 한발 한발 겨우 걷기 시작할 때가 떠오른다. 한 발을 더 딛고, 또 딛어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기를 바랐다. 


두발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던 날, 허리 숙여 자전거를 잡아 주던 날도 비슷했다. 

“페달을 앞으로 굴려.” 

“앞을 봐” 

“괜찮아.” 

“잡고 있어.” 

외치며, 숙인 허리가 아프고, 자전거를 잡은 팔에 힘이 점점 안 들어가던 순간 아이는 스스로 균형을 잡으며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 자리에 서서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때 혼자 남은 엄마는 참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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