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안 해도, 부족해도, 없어도, 정말 다 괜찮을까?
"자기 자신을 이기자."
가훈이라는 단어도 뭔지 모르던 국민학교 시절, 가훈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주저 없이 아빠는 우리 집 가훈을 말했다.
"극기"
자기 자신을 이긴다는데, 잘 와닿지는 않지만, 아빠와 엄마의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노동꾼이 여러 번의 도전과 시도 끝에 마침내 제일 좋은 대학교에 수석 입학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1. "힘 빼세요. 숨 쉬세요." 열심히 안 해도 괜찮을까?
그날도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밖으로 나갔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끌어주는데, 그냥 말 잘 듣고 열심히 따라오면 되는데, 그걸 안 하고 못한다 하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요가원을 향해 집에서 탈출해서 나왔다. 각자 자기 동작에 집중하는 곳이고, 나 역시 내 동작을 집중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내 마음도 다시 편안해지리라 생각했다.
한참을 보다 못해 동작을 교정해 주러 온 요가 선생님은 몸을 만지며 말했다.
"몸이 왜 이렇게 딱딱하고 뻣뻣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요."
딱딱하고 뻣뻣한 몸과 1시간 동안 싸워야 했다. 그 상황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열심히 살지 않아 보이는 아들 생각뿐이었다.
참아내고 버텨내는 동안 내 몸은 더 뻣뻣하고, 딱딱하게 돌처럼 굳었다.
힘들어도 참고 억지로 한 동작은 다 틀렸다. 어쨌거나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나중에는 다시 교정하거나, 잘못된 동작 때문에 다치기도 했다.
내 몸을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고, 잔뜩 몸에 힘이 들어간 채로, 숨 쉬는 것도 잊고 열심히만 살아가는 내 모습을 닮은 수업이었다.
2. 부족해도 괜찮을까?
스스로를 책임지고, 나아가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다.
조금만 더 애쓰면,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고, 엄마의 정보력이 곧 아이의 공부력이라는 세상이다. 하루만 아파서 골골 대도, 집이 엉망진창이다. 아이의 실수, 부족한 행동 모두가 엄마 잘못 같다.
엄마표 학습은 버럭 하는 성격, 일그러지는 표정에서부터 꽝이라는 생각에 학습 분위기 조성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TV를 없애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목적은 아이를 위해서였다. 도서관에서도 최대 권수로 아이를 위한 책을 잔뜩 빌려왔다. 책 폭탄이다.
집 안 분위기가 아이를 말해준다는데, 아이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책을 열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 완벽한 척 행동할수록 더 조바심이 났다.
어딜 가도 책을 들고 다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열었다. 마음 한편에는 보고 좀 배워라는 마음이 빼꼼 남아있었다. 물론 시작은 옹졸했지만, 막상 읽다 보면 책이 주는 재미에 홀딱 빠졌다.
비행기 이륙을 알리는 멘트에 사람들은 내리기 위한 채비를 하느라 바빴다. 책을 가방 속에 얼른 집어 넣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일어서기만 하는데,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지겨워하는 아이(또 목적은 아이였다.)와 비행기 좌석 모니터에서 할 수 있는 퍼즐 게임을 한참을 했다.
그 후로 시간이 날 때 책 대신 휴대폰으로 퍼즐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는 엄마에게 다가와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난 엄마가 게임을 해서 좋아."
아이는 책 읽는 엄마보다 게임하는 엄마를 더 좋아했다.
3. 미니멀? 없어도 괜찮아?
리빙 잡지 표지, 호텔 룸 같은 거실 사진을 목표로 집안일을 했다.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깨끗하고, 깔끔한 생활공간. 겨우 떠 먹인 아침 밥상을 치우며, 남은 음식을 우걱우걱 내 입으로 쑤셔 넣었다. 설거지를 하고, 널브러진 옷들을 부리나케 정리했다. 그러다 보면 작아진 옷, 계절에 맞지 않는 옷들이 보이고 다시 큰 서랍, 수납장을 넣어 다시 정리했다. 이부자리도 정리하다 보면, 시간은 이미 오전을 훌쩍 넘겼다. 서둘러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물걸레로 닦고, 소파에 앉아, 살기 위해 카페인 한 잔 밀어 넣고 나면, 아이는 벌써 집에 도착했다. 잠시 커피 한 잔 하는 10분이 끝이었다. 삶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었다. 아이가 도착하자마자 내 목표는 언제 달성한 적이나 있었냐는 듯 아이의 책가방, 간식 봉지, 책, 스케치북, 색종이들로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었다.
꽤 긴 시간 흐트러진 아이의 물건, 잡동사니들과 투쟁했지만, 내 목표 유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도착한 시간이면 이미 내 하루치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기농, 영양식, 예쁜 식기, 국과 반찬으로 그득한 사진을 볼 때마다, 움찔한다. 한 번 해볼까 들썩하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아침 식사는 안 먹는 반찬은 다 빼고, 잘 먹는 반찬 하나 또는 국 하나, 대신 따뜻한 밥이 전부다.
그래도 꼭 아침은 거르지 않는다. 내 목표는 이제 더 이상 사진 한 장이 아니다.
내 목표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나다.
전기밥솥이 없다. 김치 냉장고도 없다. 315L 냉장고 1대. 압력밥솥 하나.
청소기로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로봇 청소기를 샀다. 전체 구역을 한번 쓱 테두리르 치듯 훑는다.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왔다 갔다 반복을 하며, 진공청소기로 머리카락, 가루 부스러기, 먼지들을 다 먹는다. 다시 그 테두리를 반복해서 돌며 물걸레 청소를 하는데, 이 물체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스스로 청소를 끝내고 충전기를 찾아 들어가 에너지를 스스로 채우는 것까지 완벽하다. 먼지 통 안에는 회색 빛깔 먼지 뭉치와 까만 머리카락들이 잔뜩 들어 있다. 커피 한잔 들이키며, 로봇 청소기 멍을 하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집의 물건을 비우고, 나에게 필요한 가전제품을 사며, 내 식의 미니멀 라이프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로봇 청소기 덕분에,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많지 않은 생활 용품 덕분에 아이와 함께 웃을 에너지가 남아있다.
4. 다 괜찮다.
힘이 센 야수를 길들이는 것은 뾰족하고 강한 무기가 아니다. 덩치 큰 야수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해야 할 텐데, 타로 카드 속 인물은 나풀거리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다. 화관을 쓴 머리와, 꽃으로 만든 긴 허리띠도 야수를 만날 때 입는 복장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손으로는 턱을 쓰다듬고 있고, 야수의 머리 위에 다른 한 손을 올려두고는 따뜻한 눈으로 야수를 바라보고 있다. 야수는 자신을 쓰다듬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있다. 외유내강형인 카드 속 인물의 머리 바로 위에는 그의 능력이 무한함을 뜻하는 무한의 띠가 그려져 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용기와 정신력, 따뜻함으로 결국에는 야수를 정복하는 타로카드 8.strength 카드는 내 영혼카드이다.
타로 카드 속 야수는 마음속에 있는 강한 두려움이나 가지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화나 분노와 같은 감정일 수도 있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두려움을 다스리기 위해서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마음을 다스릴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잘 다스려서 마침내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주나 타로 점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의 사주, 타로, 관상, 궁합, 토정비결은 복을 빌거나 바라는 마음을 이용한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문제를 앞에 있는 역술가에게 털어놓는 것 자체가 치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로 상담의 경우는 타로카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카드 자체가 주는 느낌, 색깔, 등장인물, 숫자, 카드의 이름 등 다양한 상징 요소들이 그대로 내담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것을 역술가가 말로 간결하게 풀어서 설명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음이 온전히 읽히고, 공감받는 느낌이다.
하루는 아이가 타로카드 하나하나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는 자기 고민도 해결해 달라고 하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아이 앞에서는 뽑은 카드에 보이는 인물, 주위 상황들을 이야기 주었더니, 손뼉 치며, 좋아했다.
많은 칼들이 주위에 박혀 있는 그림을 보고는 침을 꼴깍 넘기며, 굳은 얼굴로 물었다.
“이건 뭐야?”
“너, 많이 힘들었데. 괜찮았어?” 이 한마디에 아이의 입은 열렸고, 마음을 보여주었다
별이 반짝이고, 컵에서 물이 쏟아지는, 무지개가 반짝 하늘에 떠있는 그림을 펼치고는 묻지도 않고 좋아했다.
그래도 엄마, 정말 괜찮을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자극이 일어나면 불편한 엄마, 조용한 곳에서 충분히 쉬어야 에너지가 채워지는 내성적 엄마에게 육아는 큰 자극이고,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매일의 연속이며, 에너지가 마침내 소진되는 힘든 여정이다. 엄마와는 완전 다른 아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내 새끼와 함께 살며,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생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통해 오히려 내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 소통해 간다.
자유로운 아이와 스스로의 방법과 스타일로 육아하는 엄마가 안전하고 편안한 가정에서 서로의 삶을 믿고 응원해 가는 데 있어, 엄마는 존재 자체로 이미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부족하고 모자라 보여서 더 채우고, 애썼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 날들이 거름이 되어,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해 준다.
그냥 그대로, 엄마 모습 그대로, 아이 모습 그대로 다 괜찮다.
아무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