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임명, 박근혜 재판
1년 전 11월, 그러니까 바로 이 맘때쯤, '바바리'를 계속 입기엔 밤이 춥고 코트를 입기엔 낮이 더웠던 초겨울 어느 오후 다섯시쯤 나는 서울 혜화경찰서 앞 카페에 있었다.
나는 경찰 기자였고 그날 나는 기사도 없었다. 그래서 그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캡(경찰 기자들은 팀장을 이렇게 부른다)의 이름이 휴대폰 액정에 떴을 때 약간 쫄리는 마음으로 수신 버튼을 만진 건 아마도 맥주 때문이었겠지....
캡은 "아무래도 최순실이 커질 거 같아 너의 선배 xxx가 그쪽에 붙기로 했으니 너도 서브로 공부를 좀 하고 있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네이버에 최순실 이름을 넣어 기사를 좀 읽다가, 날이 너무 어두워 편안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최순실 TF팀에 사람이 필요할 거 같다"는 말에 취재 잘하는 선배들과 휩쓸려 TF팀으로 들어간 것도, "최순실 수사가 시작돼 일이 법조팀으로 몰리니 아무래도 네가 법조팀에 파견을 가야 할 거 같다"는 말에 서초동에 발을 들인 것도, 특검 수사가 결정된 후 "박영수 특검 임명 소감 밝히는 로펌으로 어여 뛰어가라"는 말에 법무법인 강남으로 달려간 것도, 특검 수사가 개시되기 직전 "특검 임명도 봤으니(넹????) 아예 특검팀을 해라"는 말에 특검팀 기자가 된 것도 모두 그때 그 11월에 누가 짜놓은 각본처럼 빠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귤과 다 고장난 휴대용 가습기와 과자더미가 쌓인 대치빌딩(특검 사무실 소재지)에서 조출(조낸 일찍 출근)과 야퇴(야심한 새벽 퇴근) 당번이 될 때마다 슬퍼하며 두 달을 살고 다시 혜화경찰서로 돌아갔을 때, 조금 마음을 놓았던 것도 같다.
지난 7월 예상치 못한 인사로 나는 같은 계열 방송사로 발령이 났고 그리고 법조팀(검찰과 법원 담당팀)이 됐다. 지금 법원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들이 재판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그 11월이 이 11월까지 징하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