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Dec 12. 2017

나는 못 찾았다, 최순실을

서초동 입성의 단초, 그 두번째 이야기 

 

D일보에 기사가 났다. 


‘최순실, 압구정동 모 사우나 단골.’ 


선배는 나에게 그 사우나로 가라고 했다. (가서 뭐...?) 찾는 것부터 힘이 들었다. 그 사우나는 네이버 지도에 나오지도 않았다. ‘H아파트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일단 압구정 파출소에 들어섰다. 이러이러한 사우나를 찾고 있다고 하니 경찰이 이유를 물었다. 들어갔다 나오면 백옥미녀가 되는 대박 개짱 사우나라고 말하는 것도 웃겨서 사실대로 말했다.      

“최순실 때 밀어준 아줌마 찾으러 왔다”고.      


측은함과 비웃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모르겠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아무나 붙잡고 동네에 오래된 사우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아저씨가 “저어기 저쪽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그쪽으로 가니 거짓말처럼 내가 찾던 그 이름의 사우나가 있었다. 그 앞에서 압구정 파출소에서 나온 경찰들이 간판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기들도 D일보의 그 기사를 보고 왔다고 했다. 모른다며.......     



지하 2층 깊이 쯤 자리한 사우나는 20평이나 될까. 조용했고 프라이빗한 분위기가 딱 났다. 여기구나 싶었다. 부티 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발톱 관리를 받고 있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왜 왔냐고 물었다. 나의 목표는 세신사 아주머니. “세신사 아주머니 계세요?.” 지금 다른 손님 때를 밀고 계신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목욕하러 왔다고 하고 대금을 내고 벌거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세신사 아주머니에게 접촉...아니 아예 세신을 예약할까. 때밀이 침대에 누워서 아주머니가 내 팔에 이태리 타올을 살포시 가져다 대는 순간 “아주머니 저 사실 기자인데요...”     



벌거벗고 욕먹을 때의 수치를 견디기 어려울 거 같아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기사를 보고 왔고, 여기 일하시는 세신사 아주머니와 얘기해야 해서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겠느냐고. ‘별.......’ 이라고 표정으로만 말한 아주머니는 그러라고 했다. 30분쯤 기다렸을까, 나온 세신사는 “여기서 일한 지 6개월 됐다”고 했다. “그럼 전임자랑은 잘 모르세요?.” 자기네들은 다 인력 공급 업체 통해 오는 거라 전임자 같은 건 모르겠다고 했다. 사우나 사장님 번호를 알려달라 하자 안 된다고 했다. 네, 하고 철수.      



다음날 최순실 운전기사를 했단 아저씨 번호를 구했다. 아저씨가 말했다. “성격이 어마어마했지...평창 올림픽에 자기가 옷을 댄다 그랬어요 선수들 옷을. 2년 전인가 차 뒤에 잔뜩 싣고 압구정동 그 로데오 거리 쪽 5층 빌딩에 갖다 놓고 그랬는데. 그 사무실에 5층에 있었어요.” 통화내용을 선배에게 보고했다.      



또 다른 비밀 의상실.....! 그 빌딩을 찾으라고 했다. 후배 하나를 데리고 로데오 거리로 갔다. 빌딩이 너무 많았고 대부분 5층이었다. 하나하나 들어가 보자고 했다. 5층으로 올라가서 “여기 혹시 언제 들어오셨어요? 들어오기 전에 여기가 의상실이었나요?” 무작정 물었다. 다들 모른다고 했다. 빌딩을 20개쯤 돌았을까, 포기하고 집에 와서 자고 있는데 자정쯤 남자 선배 두 명이 미친 듯이 사진을 보내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선배의 명으로 그들도 그 밤에 압구정동에가서 5층 빌딩마다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낸 것이다. 그 운전사에게 어떤 빌딩이 맞는지 물어보라 했다. 전화를 했고, 다음날 5시에 출근한다는 아저씨에게 깊은 꾸지람을 들었다.      

결국 나는 그 빌딩도 찾지 못했다.      



안종범 전 수석이 구속됐다. 그의 집으로 가라고 했다. 갔다. 문을 두드렸다. 답이 없었다. 구구절절 취재 요청을 하는 쪽지를 써 명함과 함께 끼워 넣고 계단에 앉아 두 시간쯤 기다렸다. 기척이 없었다. 철수해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자, 안에서 드라마 소리가 났다. 안 전 수석의 부인과, 딸과 사위인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딸의 목소리가 하이톤이었다. 문에 귀를 갖다 대자 몇 마디 말을 들렸다. 카톡으로 선배에게 보고했다. 재미있는 대화였지만 기사를 쓸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소머즈의 귀를 가졌다’는 이유로 ‘(개고생하는 걸로 언론사에선 정평이 나 있는)법조팀 재목’ 소리를 듣게 됐다.      


(대다수 언론사처럼)내가 속했던 언론사도 너무 늦게 최순실 국면에 뛰어들었다. 소명있고 실력 있는 선배들과 이른바 TF팀에 들어가 개고생을 했지만 늦게 시작한 취재는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소득은 많지 않았다. 우리 팀이 몇 개 기사를 써내긴 했지만 나는 위에 늘어놓은 것처럼 실패만 했다.      


아등바등의 절정이었던 시절인데 취재의 기본은 맨땅의 헤딩이라는 교과서 속 교훈을 체감하게 한 시절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고된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가 끝나고 다들 모이면 한잔씩 기울이던 술맛도 그렇고. 어떤 아등바등에서도 결국 얻는게 있어서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끝.                 

작가의 이전글 그 11월, 이 11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