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3

by 마릴라 Marilla

이사에 대한 고민과 몸의 통증에 무기력까지 얹어져 불안이 자꾸 찾아와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 가본 장소에는 생각보다 많은 내담자가 있어서 놀랐다. 초기 상담을 하고 1주일 뒤 담당자가 배정되어 1회차 상담을 진행했다. 여성 상담자만 만나다가 처음으로 남성 담당자를 만났다. 치료받고 감기가 나았다가 다음 해에 다시 걸리듯 상담도 받고 나아졌다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 생긴다. 병원에서 증상을 말하듯 상담도 마음의 증상을 말해야 하는데 최근의 증상을 말하는 병원 진료와 달리 마음 상담은 묻어둔 기억, 어린 시절까지도 거슬러 올라가 꺼내야 하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과거 상담에서 이미 토해낸 기억이지만 새로운 상담자를 만나면 그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 외면하고 싶은 상처를 상자에 담아 어딘가 숨겨놨는데 그 상자를 여는 과정이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심리적 방어기제로 여기까지만 말해야지 생각해도 말하다 보면 더 깊은 기억까지 꺼내게 된다.


인생 처음으로 상담이란 걸 받을 땐 낯선 사람에게 내 얘기를 꺼내는 게 어렵고 힘들게 꺼낸 얘기를 듣고 의사가 처방을 내리듯 상담자가 어떤 해답을 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담자는 들어주는 사람이고 그 시간에 내가 말하는 내용을 나도 3자처럼 들으면서 스스로 깨닫고 방향을 찾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역할을 상담자가 맡는다. 아마 오늘이 인생 첫 상담이었다면 나는 중도에 포기했을 터였다. 기존에 경험한 상담과 달리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이 붙은 상담에서 내 상처를 꺼내놓고 그 상처의 대면으로 서러운 눈물을 쏟고 있는데 상담자는 담담하게 종이를 내밀면서 어떻게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설명했다. 1시간 동안 내 얘기를 마친 뒤 나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제가 지금 어때 보이나요?”


“어딘가 불편해 보입니다.”


“그렇죠? 눈도 안 마주치고 얼굴에도 티가 나고. 선생님 혹시 T세요?


“MBTI를 말씀하신 거라면 F입니다.”


“왜 감정적 공감이 전혀 없으세요? 선생님이 초두에 사인하라고 주신 종이의 첫 문장이 ‘사실을 그대로 말한다’ 인데 이런 상황이면 다음 상담에서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을 것 같아요. 덜 말하고 제 기억을 포장해서 말할 것 같아요. 내담자에게 맞는 상담자를 만나야 효과가 있고, 과거에 한 번 상담자를 바꾼 적이 있습니다. 상담자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이 시간을 통해 도움받고 싶어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첫 상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지금 학생으로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이대로 가면 다음 주에 안 오게 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죄송합니다. 제가 순서를 놓쳤네요. 얘기를 들으면서 OO님이 정말 힘들고 외로웠구나. 그럼에도 혼자서 잘 견디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말은 아까 하셨어야죠. 자꾸 종이만 내밀고 프로그램 설명을 하니 얘기한 걸 후회하게 되잖아요.”

외로웠겠다는 말에서 참았던 설움이 몰려와 서럽게 울었다. 이렇게까지 울 마음이 없었는데 통제되지 않는 눈물 댐이 방류되어 꺼이꺼이 넘쳤다.


“상담실을 1시간만 잡아뒀는데 여기서 끝내면 안 될 것 같아요. 좀 더 진행하시죠.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말씀해 주셨어요. 보통 이런 말 안 해 주시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맞아요. 마음이 닫히면 다시 오기 힘들죠. 고맙습니다.”


그렇게 3회기가 진행되는 동안 나름 내담자 경력이 있어선지, 1회기 50분이라는 통상적인 시간제한 없이 진행되어선지 안 좋은 상황에서 시작된 상담임에도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었다. 삶의 방향성이 ‘가치’인 사람은 처음이라는 말과 함께 제안해 줄 방법을 이미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조기 종료를 검토해도 될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상담 전의 불안과 걱정이, 상담 일정을 잡은 순간부터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 상담 내용을 정리하며 이 정도면 다음 회기에 상담을 마쳐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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