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고와 포스터에 전형적인 멜로 느낌이 풍겨 외면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상영이 길어지기에 뭔가 있구나 싶어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러 갔다. 사람이 몰리거나 인구에 유독 오르내리는 것에는 청개구리 심보로 더 기피하는 타입이지만 유행의 흐름이 아니라 공감의 흐름이 포착되어서다. 예고편이나 포스터에서 풍기듯이 잔잔해 보이는 영화가 시선을 붙잡기란 어려운데 담담한 말투로 사람을 잡는 재주가 있었다.
이 영화는 멜로가 맞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멜로가 판타지에 가까운 건 순정 만화를 보듯이 일상의 인물이라 연기하지만 현실적이지 않고 지형지물이 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워서다. 이 영화에서는 관객이 동일시할 부분이 하나 이상 나온다.
서울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 시민이 되는 이주민의 도시다. 서울 태생이 아닌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은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10배로 힘들다는 말은 자취를 시작하고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살았거나 살고 있는, 여전히 이방인 같은 사람들이 가장 동일시할 부분이다. 집 하나 있고 없고가 삶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게 돈벌이나 연애, 결혼, 자존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에 그렇다. 꿈이 있고 원하는 바가 있지만 가진 게 없는 후천적 서울 시민은 집과 꿈, 사람다운 삶의 씨앗이 되는 돈을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사랑을 사치로 여기며 살기도 한다.
사랑했던 순간은 컬러로, 이별 뒤엔 색이 사라져 교차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흑백 세상에 너무 오래 있어서 한 번도 컬러였던 적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내 세상에도 색이 입혀지고 화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필터를 입힌 듯 뽀샤시하고 리즈시절만 보여주는 것 같은 드라마가 아니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시절이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예상과 다른 직장 생활, 세입자의 서러움, 찌질한 연애, 막막함에 치닫던 순간의 조각 같은.
'만약에 우리'라는 가정의 질문을 하는 은호와 답하는 정원의 모습은 흔한 드라마의 수순처럼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각자.’의 엔딩이었다. 서로 원하는 꿈을 얻고 은호는 가정을 이뤄 예쁜 딸이 있는 상황에서 왜 가정법의 질문으로 마음을 확인하는 걸까. 서로를 놓음으로 결혼도 안정도 제때 성취한 그들이 감정을 확인하는 그 과정이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부리는 여유처럼 보여 삐딱한 마음이 되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열패감에 휩싸였듯이 여전히 흑백 속에 사는 나는 컬러 세상에 있는 그들을 상대로 질투와 열등감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뭘 놓았을까. 혹은 뭘 놓쳤을까. 아니면 뭘 놓지 못해서 여전히 흑백 속에 있을까.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그래서 조금 아렸다. 내 현실과 달라서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컬러에 진입하지 못하고 흑백에 갇힌 사람이어서.
집은 장소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했다. 몸을 쉴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사람의 따스함은 그게 없어 서글퍼 본 사람이 느끼는 거대한 공포다. 내가 지금 불안하고 슬픈 것은 인생에 필요한 그 두 가지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