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것과 사라져 가는 것
사과(沙果)
마림(眞林)
가을 끝자락에서
사과 하나가 붉게 물든다
익어가는 건 기쁜 일인데
내 마음은 시들어간다
빨갛게 차오르는 색 아래
조용히 스러지는 시간이 있다
햇빛을 머금은 만큼
그늘이 깊어지는 것처럼
너를 사랑할수록
더 작아지는 나를 보듯
나의 사과는
익을수록 가벼워지고
사라질수록 달아진다
붉게 물든다는 건
어쩌면 끝에 가까워지는 것
그래서인지
사과 하나를 바라보는 일에도
마음 한쪽이 저문다
익어가는 것과
사라져 가는 것은
늘 같은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