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거리에서 빛나는 별들이 만든 한 장의 그림
가을밤이 깊어질 때쯤이면, 동쪽 하늘에서 제일 먼저 올라오는 별자리가 있습니다.
아직은 코트도 제대로 꺼내지 않은 계절인데,
갓 시작하는 겨울의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자리가 불쑥 얼굴을 내밀죠.
마치 “나 먼저 왔어”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요.
이 장면을 보면 언제나 계절이 바뀌는 속도가 사람 마음보다 조금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리온자리는 너무 ‘그림처럼’ 보여서 그냥 하늘 위에 붙여둔 스티커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삼태성(오리온의 허리띠)이 정확하게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아래 리겔, 위로 베텔게우스까지,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배치한 듯 가지런합니다.
그런데요, 이 별자리의 진짜 매력은 그 모양이 사실은 ‘환상’이라는 데 있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한 평면 위에 올려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전혀 다른 거리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베텔게우스는 약 548광년 떨어져 있고,
리겔은 860광년이나 더 멀리 있습니다.
허리띠를 이루는 세 별은 각각 700~1200광년 사이 흩어져 있고,
벨라트릭스는 250광년 정도로 오히려 훨씬 가까워요.
하늘에서 보면 ‘한 줄’ 같지만,
우주의 깊이에서는 완전히 다른 지점들에 서 있는 별들입니다.
그저 우리가 사는 지구의 시선에서만
이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보일 뿐이죠.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이상하게 사람 관계가 떠올랐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먼 마음,
멀리 서 있는 것 같아도 묘하게 연결되는 관계들.
각자의 거리에서 살아가도,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하나의 자리’를 이루기도 하는 것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
밤마다 오리온이 조금 더 높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 역시 각자의 거리에서 빛나고,
서로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때로는 교사인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 또는 가까이에 서 있죠.
그런데도 우리는 한 교실이라는 하늘 아래에서
어떤 날은 별자리처럼 예쁘게 한 장의 그림이 됩니다.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 하나의 오리온을 만드는 것처럼요.
가을은 참 묘한 계절입니다.
낮은 짧아지고, 공기는 서늘해지고, 저녁은 빨리 찾아오죠.
하지만 바로 그 시간이,
우리가 먼 것들을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도 오리온은 어김없이 떠오르겠죠.
저는 아마 창문을 열고 조용히 인사할 겁니다.
“벌써 왔네. 오늘은 어디에서 빛났어?”
그리고 생각할 거예요.
멀리 있어도,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게 별자리의 아름다움이자,
가을이 건네는 작은 가르침이니까요.
▣ 부연 설명(오리온의 허리띠)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루는 세 별은 알니타크, 알닐람, 민타카로, 이 세 별이 밤하늘에서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 특징입니다. 사다리꼴 안의 나란히 늘어선 밝은 세 별 민타카, 알니탁, 알닐람은 '오리온자리 허리띠'(Orion's Belt)라고 불린다. 민간에서는 이들을 '삼태성(三太星)'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북두칠성 머릿쪽에 위치한 '삼태성(三台星)' 별자리와는 다르다.
1) 세 별의 기본 정보
민타카(Mintaka)/약 1,200광년/아랍어로 '허리띠'를 의미. 세 별 중 가장 어둡게 보임.
알닐람(Alnilam)/약 2,000광년/아랍어로 '진주줄'을 의미. 가장 멀리 있으나 겉보기등급이 가장 밝음.
알니탁 (Alnitak)/약 700광년/아랍어로 '띠'를 의미. 세 별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며 가장 가까움.
2) 가까운 별이 더 밝게 보이는 게 아닌가요?
세 별 중 가장 멀리 떨어진 알닐람(약 2,000광년)이 오히려 가장 밝게 보이는데, 그 이유는 알닐람의 절대광도(실제 밝기)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장 가까운 알니탁(700광년)보다 조금 더 먼 민타카(1,200광년)가 더 어둡게 보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보는 ‘밝기’는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별 자체의 광도 + 거리의 조합으로 결정됩니다. 오리온 허리띠는 그 사실을 교과서보다 아름답게 보여주는 셈이죠.
3) 오리온자리는 “겨울 별자리”지만, 가을부터 시작됩니다.
가을 : 오리온자리는 늦은 밤~새벽 동쪽 하늘에서 먼저 떠오릅니다.
겨울 : 해가 지면 곧바로 남쪽 하늘 높이 자리합니다. 가장 잘 보이는 계절!
봄 : 서쪽 하늘로 기울며 점점 일찍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지구의 공전으로 밤마다 별들이 동→남→서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일찍’ 떠오르기 때문에, 가을엔 밤늦게 보이던 오리온이 겨울엔 저녁에 가장 멋지게 보이는 별자리가 되는 것이죠.
4) 정리
겉보기등급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본 밝기이고, 절대등급은 별이 가진 ‘진짜 밝기’입니다. 가까워도 어둡게, 멀어도 환하게 보이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이 겉보기등급이고, 별의 본모습은 절대등급이기 때문입니다.
5) 주의!
오리온자리 허리띠를 이루는 세 별인 알니탁·알닐람·민타카는 이름의 뜻이나 거리가 흥미로워요. 다만 거리는 여러 출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니 ‘약 천여광년 이상’이라는 표현을 쓰면 충분히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