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겨울이 유난히도 추워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자랐다. 그 평범 속에서 나의 키워드는 '준수'였다.
준수한 생활 수준, 준수한 성격, 준수한 성적, 준수한 교우 관계. 준수함 속에서 나는 원만함이라는 꽃을 피웠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줄 수 있는 원만한 아이. 그런 준수함과 원만함이 매사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만들었다.
우여곡절이 없던 원만함은 기어코 오만함을 만들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오만함은 게으름이라는 습관을 낳았다. 실패의 끝에서도 매번 유연하게 넘어갔던 임기응변은 시간이 지날수록 독이 되었다. 실패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실패를 마주하면 매번 회피하게 되었다.
그러다 실패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그저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합리화하며 나 자신마저 속이곤 했다. 나를 속이는 시간이 반복되자, 나에 대한 믿음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불확실한 시간들을 속이고 회피하며 낭비했다.
낭비한 결과치고, 입시의 결과는 운이 없게도 운이 좋았다. 오만한 몸뚱아리는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감사한 줄 몰랐고, 소중한 사람의 소중함을 몰랐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살아왔던 나날들. 그 계절의 끝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준수하게 살아왔던 시절 속에서 내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았다. 찬란한 크리스마스가 있었고, 따뜻한 구세군의 종소리가 있었다. 목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털목도리가 있었으며, 따뜻한 유자차가 감기에 부은 목을 달래주었다.
내가 나를 속여왔던 시절 속에서, 나의 준수함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지독한 추위가 기어코 찾아왔다.
이십 대 초반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기억한다. 술자리가 길어져서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깬 후 본의 아니게 친구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어릴 때는 영훈이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안타까워.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러게. 나도 영훈이가 성공해서 멋진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우연히 엿들은 친구들의 대화는 심장을 후벼 팠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 나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때, 그 친구들에게는 내가 왜 그리 못나 보였을까. 나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겠지만, 그때의 나는 사무치는 상실감을 느꼈다.
명문대 진학, 대기업 취업을 실패한 내가 인생을 실패한 패배자가 된 느낌.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오만한 나날들을 스스로 속이고 숨기며 회피했지만, 이미 모두 알고 있었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도망쳤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의 혀가 창이 되어 내 심장을 푹 찔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깬 척 연기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마침 겨울이었고, 집에 가는 길은 유난히도 추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봐도, 전혀 포근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성공을 위한 길이 아닌,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괴리감은 컸다. 하고 싶은 것은 지나치게 막막한 어두운 초행길이었다. 다행인 건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기에, 친구들과의 상담으로 견문을 넓히고자 하였다.
그때마침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었고 회사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며, 나의 능력과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과 격려, 희망이 나를 숨 쉬게 했다. 멘틀까지 떨어진 나의 자존감을 알아주는 이.
목마른 나그네에게 이온음료 같은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 회사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해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내 능력을 믿어주는 사람 옆에서 증명하고 싶었다. 나의 오만함으로 길을 잃었던 준수함을 꽃피우고 싶었다.
들뜬 기대감을 안고 입사했지만, 현실을 참혹했다. 스타트업의 회사는 위태로웠고, 직원들의 월급이 밀릴 정도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친구는 젊은 ceo의 거만함과 허세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을 다루는 리더십이 부재했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버티기로 했다.
버텨낼수록 시들고 있었다. 친구는 나의 원만함과 준수함을 이용했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나는 회사의 많은 문제들을 감당해야만 했고, 야근수당 없이 매일을 야근하며 적은 월급을 받았다. 꾸준히 능력 없는 상사들이 입사를 했고, 끊임없이 경쟁과 증명을 요구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마음의 병이 생기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증명하고자 버틴 시간들은 미련한 나의 아집이었다. 친구라는 이름아래 이용하기 좋은 도구.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병든 마음은 불안과 우울을 낳았다. 그 친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때가 되자, 그만두기로 결정하였다.
어느새 30살이었다. 서른이 된 나는 다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예전처럼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마저 없었다. 방 안에 웅크려 들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너무 요란했고, 눈길은 너무 미끄러웠다. 무엇보다 밤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해가 뜨는 것을 반긴 것은 아니다.
그저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그렇다고 봄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방에서 외로운 겨울을 2년쯤 보냈을 때,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의 술주정을 들은 이후다.
"우리 그만하자. 난 진짜 너 좋아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유치한 말투에서 나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의 상태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병원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예전처럼 나를 대했다. 그 무심함이 고마웠다. 내가 특별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금세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금방 나아지지는 않았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다시 어둠이 나를 감싸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혼자가 되는 걸 택했다. 마음의 겨울에는 끝없는 눈이 내렸고, 지독한 추위와 홀로 싸웠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며 누구와도 대화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나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부정적인 생각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염세의 종류는 다양했다. 사람들의 대한 불만, 세상을 향한 칼날. 꼬인 생각들을 문장으로 늘어놓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낡고 묵은 생각의 녹이 조금은 옅어졌다.
추위에 떨던 체온이 조금은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배설했던 문장들이 꽤 쌓여갔다. 감정의 배출이 표현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다 표현의 대상을 찾기로 했다. 그 과정은 정말이지 단순했다.
그동안 끄적였던 문장들을 정제하지 않고 sns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아마 목표를 정하고 고민했다면,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날 것의 문장들을 옮기며, 이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가 시리고 추운 나의 체온을 올려주었기에, 그 따뜻함에 취했다.
표현과 소통의 힘은 대단했다.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었다. 누군가는 나의 글에 공감을 하고, 나를 위로했다. 나의 글이 특별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잊고 있었던 나의 준수함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만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 그 속에서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 고통과 고난의 겨울이 그렇게 못나 보이지 않다는 것이, 나를 따뜻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과의 소통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작은 끄적임에서, 염세에 대한 나의 시선 변화를 글에 담고 싶어졌다. 좀 더 섬세한 감정을 담기엔 다른 플랫폼이 필요했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웹작가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의 탈락 속에서 나의 부족함에 대해 고민하였고, 전략과 계획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오만함과 게으름을 마주하기도 하였지만, 실패의 경험 속에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에세이를 브런치에 쓰고 있다. 가끔 소재가 떨어지고,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재능을 의심한다거나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내 세상의 주인공이며, 크리스마스에 외롭지 않은 케빈이 된다.
가끔 내 글이 너무 날카로워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글 속에서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보려 노력하지만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며 불안이 고조될 때도 있다.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다, 쓰고 보니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글도 있다. 내 안의 염세가 지나치게 드러나 나 스스로가 불편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게도 꿈이 생겼다. 글 안에서 나는 준수할 필요도 없고, 원만할 필요도 없다. 나의 오만함과 게으름 또한 인정하고, 지독하게 추웠던 나의 겨울을 속이고 회피할 필요도 없다. 글 안에서 나는 온전한 나 일수 있다.
가끔 피가 나서 베이고, 다시 어두운 동굴 속에서 혼자 소리치게 되더라도.
끝내 모닥불을 지피고 목도리를 두르며 너에게 외치겠다.
"나는 글을 쓰며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