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엄마 관련된 이야기는 많이 쓰면서 왜 아버지 이야기는 한 번도 안 써? 아버지가 아시면 서운해하시겠다."
"나 글 쓰는지도 모르실걸? 책 나오면 그냥 갖다 드리려고 아직은 별말 안 했는데. 그러고 보니, 아버지 얘기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네."
그렇다. 친구 말대로 아버지에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쓴 적이 없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게 아버지의 기억은 '맹장 수술 자국'처럼 보이기 싫었던 상처였다.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등이 굽어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나의 이병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 아버지는 '폭군'이었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말 그대로 무뚝뚝한 경상도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무섭고 싫었다. 퇴근하고 거의 매일을 음주를 하고 들어오셨다. 취해서 집에 오신 아버지는 항상 기분이 안 좋으셨다.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엄마와 형에게 폭언을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온 가족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방에서 혼자 우는 시간이 많았고, 나는 그런 엄마를 위로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행동은 고스란히 형에게 이어졌다. 형은 나에게 친구 같은 형보다는 권위적인 형이었다. 그런 형이 믿음직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집에서 나의 유일한 숨구멍은 엄마뿐이었다.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아버지는 유독 나를 이뻐하셨다. 형처럼 대들지 않고 고분고분해서 인지 나에게는 형처럼 높은 잣대를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저 엄마에게 조금만 따뜻하게 말해주시길, 가족들에게 조금만 더 다정하시길, 술을 좀 적게 드시기를 바랐다.
철이 없던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아버지를 '김일성'이라 표현했다.
"우리 아빠는 김일성이고, 우리 형은 김정일이야. 나는 집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엄마는 맨날 나 붙들고 우셔. 집에 있으면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외로워. 근데 말할 데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철없는 생각이지만, 어린 시절 '남들에게만 좋은 사람'인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슬퍼하시는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군대에 다녀오면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진 시간을 보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따뜻한 우리 안에 있었는지, 아버지가 어떤 책임감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회로 나가 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된다는 부담감이 생기자, 지금까지 버텨온 아버지가 처음으로 슈퍼맨 같아 보였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셨지만, 한 번도 일을 빠지신 적이 없었고, 돈 걱정을 하지 않게 해 주셨다.
그러나 간사한 자식 놈의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대 청춘을 방황하고 술을 마시며, 항상 나를 걱정하고 믿어주지 않는 아버지가 다시 원망스러웠다.
"너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학점은 몇 점이니?"
"취업은 어디로 할 거야?"
"결혼은 언제 하려고?"
따뜻한 말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항상 불신과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럴 때면 속에서 안 좋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아버지는 뭐 얼마나 대단한 인생을 사셨다고. 부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끼리 행복하고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 엄마, 형, 나 누구 하나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데. 아버지는 제일 중요한 걸 아직도 모르시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어느새 35살이 되었다.
몇 달 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할아버지처럼 야위어 계셨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빨리 집에 가라는 아버지의 눈이 가지 말라고 속삭였다. 간호로 지치신 엄마를 집에 보내고, 아버지 옆에 앉아서 병실을 지켰다.
아버지 밥을 챙겨드리고, 주무실 때 옆에 앉아 책을 꺼내 읽었다. 어느새 등이 굽은 아버지를 보며, 마음은 속상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은 따뜻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아이처럼 내게 의지했다.
"영훈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를 믿어주시는 아버지의 말이 왠지 모르게 더 슬펐다.
몇 주 전 김장을 하러 본가에 들렀다.
임신 중인 형수님은 소파를 지켰고, 형, 엄마와 함께 거실에서 김장을 했다.
아버지는 심부름꾼을 도맡았다. 김치통을 닦고, 중간중간 내게 커피도 수혈해 주시고, 배추를 나르고.
'폭군'아버지는 이제 없었다.
김장을 하며 만든 겉절이와 수육으로 식사를 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신이 나셨다. 맥주를 한잔 해야겠다는 말에, 아버지도 한잔을 드셨다.
"엄마. 아버지 아직 건강 회복 안되셨는데, 맥주 드리면 어떡해. 하여튼, 엄마는."
형은 이내 엄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아버지는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맥주를 싱크대에 버리신다.
할아버지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폭군일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슈퍼맨일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밥그릇에 남은 밥을 보며,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켜냈다.
미워하기엔 남은 생이 너무 짧다. 남은 인생은 사랑하며 살리라 다짐한다.
아버지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아버지.
아버지가 미웠지만,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제게 '김일성'이 아니라,
영원한 '이병철'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