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잠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불행한 이유

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by 마림


예민한 것은 아주 불행한 것이다.


특히 그것이 '잠'에 영향을 끼친다면 불행에 가깝다.


나를 예로 들자면, 20대 중반 캐나다로 유학을 갔던 시절이 떠오른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전날부터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정도는 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아침 비행기라 전날 밤을 새우고 '비행시간이 기니까 비행기에서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비행시간은 10시간이 넘었고, 1시간 정도는 잠에 들 줄 알았지만 단 1분도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챙기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픽업을 기다렸다. 밴쿠버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에 또 몇 시간. 그렇게 숙소에 도착한 이후, '새로운 환경'이라는 불안이 또 나를 기다렸다. 거의 이틀을 뜬눈으로 지새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맥주 3캔을 마셨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3일 정도를 잠을 자지 않고, 얼굴이 띵띵 부어서야 몇 시간 잠이 들었다.


군대에 끌려가거나, 원치 않은 일을 하러 간 것이 아닌 무려 '어학연수'인데 말이다.






체력이 좋지 않아 잠을 잘 못 자는 것인지, 잠을 못 자서 체력이 좋지 않은 것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잠은 정신력이야. 어차피 죽으면 다 잠을 자는데, 미련하게 오래 자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야."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잠을 자지 못하면 하루의 컨디션이 엉망이다. 중요한 것은 잠을 자지 못한 것보다 잠을 못 잘 것 같다는 생각에 있다.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을 못 잔 날에는 유독 더 피곤하게 느끼며 '오늘은 잠을 잘 잘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늘 달고 산다.


이러한 예민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피곤해도 차,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에서도 쉽게 잠에 들지 않게 한다. 에너지의 충전이 중요한 사람에게 충전이 되지 않은 채로 버텨야 하는 시간은 고통에 가깝다. 늘 그러한 시간들을 쓸데없는 생각으로 버틴다. 쓸데가 있었던 적은 많지 않다.






한때는 예민함을 우월함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센스와 섬세함의 영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컨디션과 체력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예민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체감하게 되었다. 그러한 예민함은 골목길에 비둘기 몇 마리에도 길을 삥 둘러가게 만든다. 상상이 만들어내는 지옥은 생각보다 괴롭다.



'무던해지고 싶다. 부지런히 무던해지고 싶다.'



공사 현장일을 하는 친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불면증? 우리 현장 와서 하루만 일해봐. 머리 데자마자 바로 잠들어. 진짜 이거는 진리야."


음.


반박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군대 시절, 신체의 한계까지 부딪혔을 때 머리만 데면 잠에 들곤 하였다. 그렇게 육체는 정신을 앞선 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장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은걸?


그렇다면 해결책으로 '운동'이 있겠다.


운동을 하며 건강한 육체를 만들고 체력을 기르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잡념을 없앨 수 있겠다. 수면 부족으로 이어지는 컨디션 저하를 막고 덜 예민한 하루를 살 수 있겠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행하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기어코 자존감은 낮아진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시 또 합리화를 해본다.


'나의 예민함은 남다른 시선이라는 장점도 있잖아? 삐딱하지 않으면 내 글이 재미없잖아?'


역시 합리화는 내게 가장 쉬운 것이다.


오늘의 글 역시 잠에서 결국은 합리화로 끝이 났다.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보다 먼저, 무던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이들이 부럽다. 예민한 사람들이 예민함을 통제하는 기술이 부럽다. 그 기술은 꾸준함과 인내심, 노력 같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머리를 대면 잠이 오는 수준으로 무던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예민함을 섬세한 사유로, 잡념은 명상으로, 컨디션은 체력으로 다스릴 수 있기를.


하루하루 나를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