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호기롭게 월, 수, 금 연재를 정해놓고, 수요일 연재를 건너뛰었다.
'글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다.'
witer's block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떠올렸지만, 이것도 게으름의 일종인지 무능함인지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기운이 들고야 만다.
늘 괜찮은 소재로 괜찮은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기어코 욕심은 고통을 만들어낸다.
오늘은 '맘충'에 대한 소재로 글을 써보려 했다.
부모의 과잉보호가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인지, 부모의 불안으로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 써보려다가 그럴듯하게 쓸 자신이 없어서 머뭇거리게 된다.
하긴, 아이를 키워보지도 않은 내가 부모의 입장을 감히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소재를 떠올리다가,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쓰기로 했다. 글은 역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쓸 때, 손이 움직이고 엔터키를 누르게 된다.
글 쓰는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글이 안 써져도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람, 글이 안 써질 때는 잠깐 쉬는 게 좋다는 사람. 두 가지 의견에 정답은 없는 듯하다. 쓰다 보면 좋은 글이 써질 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글도 있다. 지나고 보면 좋은 글도 있고, 부끄러운 글도 있다. 부끄러움을 통해 성장을 느낄 때도 있다.
지나간 나의 발자취로써 의미가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창피한 글이라도 지우지 않는 편이다. 지나고 보면 그때의 감정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고, 그중에는 괜찮은 문장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유하는 글을 쓰는 것이 괴롭다는 작가도 있다. 내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생각을 끄집어내는 만큼 감정 소모가 상당하다는 것. 나 또한 깊은 사유를 통해 괴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표현을 통해 해소되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그렇기에 잘 써지지 않는 날에도, 그 감정마저 어떻게든 써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 글도 그 일부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다독가는 아닌지라, 문학적 조예가 깊지도 않았고, 사용하는 단어의 폭이 넓지도 않았다. 그저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다. 괜찮은 책을 몇 권 읽고 나니, 점점 나의 문장들이 시답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작가라면 좀 더 깊은 사유와 그럴듯한 문장으로 비유하고 묘사해야 되는 것 아닐까. 그러한 생각들이 키보드 앞에서 주춤거리게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누구나 느끼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고민하지만, 결국 쓰고 있는 단어는 한정적이다. 결국엔 책을 꺼내 사유의 폭을 넓히려 한다. 고전을 읽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본다. 무기는 많을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하다 보면, 이내 삐딱한 생각이 들곤 한다.
'무기가 많아도, 꺼내서 써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너무 많으면 그거 언제 다 꺼내. 나만의 무기가 더 중요하지.'
그러다 보면 또 나만의 무기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아직 나만의 무기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생각이다. 결국은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 글 역시 어떠한 정답에 도달하지 못한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쓰는 게 맞을까, 쉬는 게 맞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늘 정답이 없는 것을 찾아가려 애쓴다. 그래서 자주 불안하고, 자주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한 편의 글을 썼다. 잘 써지지 않는 날에도 결국 키보드를 두드렸고, 이 문장까지 도착했다.
어쩌면 글쓰기는 잘 쓰는 날과 못 쓰는 날 사이에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 사이를 계속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글이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잘 써지면 잘 써지는 대로.
그래서 오늘의 이 글도 존재한다.
정답은 여전히 없지만,
나는 오늘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