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나는 친가, 외가를 통틀어 사촌 중에 막내이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귀여움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로 인해 애교도 많고 적당히 튕길 줄 아는 성격을 가졌지만, 당연한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오만함 또한 숙명이었다.
친척 집에 가면 늘 사랑을 받았다. 사촌 형들은 항상 나를 "우리 막내"하며 챙겼고, 누나들은 귀여워했다. 어릴 때부터 누나들이 아닌 형들을 따라다니며 남자다운 행세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을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고등학교 1학년.
갑작스러운 뺑소니 사고로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냉혈한이라고 하기엔 할머니를 너무 사랑했다. 아마 처음 겪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 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산소에 매장을 할 때, 아버지가 오열하던 순간에도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온몸이 거부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친척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와 친척 간의 갈등이 있었고, 사촌들은 이민을 가고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소식이 끊겼다. 군대 입대 전,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들린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친가 친척들 모두 잃었다.
친척이라는 것은, 혈육이라는 것은 명절 때 가끔 보는 사이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왜 태어났고,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울타리 안에 있는지, 무조건 적인 호의를 확인할 수 있는 연대감인 것이다. 그 뿌리가 흔들리며, 나의 가족은 섬이 되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오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정말 너무하게도, 어머니는 내가 군대에 있다는 이유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다. 괜히 내가 신경 쓸까 봐 라는 이유였다.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큰 외삼촌도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친척간의 문제가 또 생겼고, 사촌들과의 관계는 역시나 멀어졌다.
어릴 적 그렇게 친구처럼 재밌게 놀던 형들이 어느 순간 눈을 마주치기 어려운 사이가 된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경험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렇게 우리 가족은 우리끼리 뭉쳐야 하는 섬에 갇혔다.
그 와중에도 sns의 순기능이 있었다. 호주로 이민을 갔던 큰형과 인스타그램으로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고, 사촌누나와도 그랬다. 카카오톡 생일인 친구 기능으로 외가 사촌 큰형의 생일에 축하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한 기능이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남게 해 주었다.
얼마 전 친형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니,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형의 결혼식이니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은 너무 반가웠다. 큰아버지는 많이 늙으셨지만 내게 먼저 악수를 청하셨다. 큰엄마와 나는 어릴 적 추억이 많았다. 같이 등산도 다니고, 내가 유독 애교를 많이 부렸었다. 큰엄마는 그 시절 얘기를 내게 먼저 꺼냈다. 큰엄마께도 그 추억이 소중하셨나 보다. 호주에 있는 재엽이 형은 오지 못했지만, 큰누나 현주누나가 왔다. 누나는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었고, 조카들을 처음 봐서 서먹서먹했지만 누나는 특유의 입담으로 분위기를 편하게 해 주었다. 딱히 지금 줄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지갑에서 햄버거 쿠폰을 꺼내 주었다. 어떻게든 막내를 챙겨주고픈 누나의 마음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외가의 큰형과 나와 나이가 같은 사촌도 왔다. 큰형은 큰형답게 나를 계속 챙겼다. 형수님을 먼저 인사시켜 주고, 내 짐과 밥, 사진촬영을 신경 쓴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나는 막내, 형은 형인가 보다. 형의 결혼으로 그러한 사랑을 오랜만에 느꼈다. 감사하면서도 속상하기도 하고 그랬다.
2/4. 조카가 태어났다. 남자 아이고, 이름은 김이한.
형수님은 산후조리원에 있고, 그래서 설날에는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나 그리고 형이 당일 오전에 잠깐 들러 밥을 먹기로 했다. 명절에 시골에 간 기억은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집에서 대충 먹어도 될 텐데, 엄마는 늘 전을 부치고 갈비찜을 하신다. 덕분에 배는 풍족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은 늘 허전했지만.
이번 설은 좀 다를 것 같다. 형수님과 조카 이한이의 소식 덕분이다. 가족이 늘어나는 것은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친척들, 사촌들에게도 자주 연락하며 잘 지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그런 용기가 있을지, 또 미루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한다.
우리 가족이라는 섬에는, 아직 다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