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3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가족은 항상 설렁탕을 먹으러 가곤 했다. 무뚝뚝한 두 형제가 있는 가족에게 일종의 단란한 루틴이었다. 어린 시절, 늦잠을 자고 싶은데 설렁탕 루틴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일어나. 얼른. 설렁탕 먹으러 가자."
"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이빨을 닦고 세수를 했다. 메뉴를 제안하거나 동행을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라는 게 없을 정도로 가부장적인 집이었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하였다. '아침에는 입맛도 없고, 설렁탕은 너무 헤비 한데. 더군다나 더워죽겠는데 맨날 설렁탕이야.' 그 계절은 여름이었다.
설렁탕집은 서울대입구 쪽 골목길에 있었다. 우리 집은 사당이어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가족끼리 차를 타고 이동하여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셨던 것 같다. 차에서는 항상 라디오가 틀어졌다. 듣기 싫은 트로트나 재미없는 뉴스, 시답지 않은 사연이 들리곤 하였다. 그렇게 설렁탕집에 도착하면 늘 그렇듯 설렁탕 4인분. 다른 메뉴나 사이드를 추가한 적도 없다. '또 설렁탕이야.'라는 마음으로 한 그릇 넘길 때면 내 취향과 관계없이 설렁탕에 후추가 뿌려진다.
"이렇게 먹어야 맛있어."
"나는 후추 뿌리는 거 싫은데."
내 취향과 배고픔, 숙면이 외면되는 외식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화목한 분위기도 늘 아니었기에, 굳이 이렇게 외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우리 가족은 식사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아버지는 10분이면 음식을 다 드시고 형 또한 그러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오랜 훈련 끝에 그 속도를 따라잡았다. 따라잡기보다는 양이 워낙 적으시니 적당히 드시고 그만두셨다. 일종의 체념인 것 같기도 했다. 속도가 느린 나는 천천히 음식을 먹고 있으면 항상 핀잔을 듣곤 했다.
"왜 이렇게 맛없게 먹어. 맛없어?"
아니.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천천히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문할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맛있게 먹고 있어요."
얼른 속도를 내서 음식을 비워본다. 질린다고 생각했던 설렁탕은 먹다 보면 늘 맛있었다. 뜨끈한 국물이 속을 데워주고 든든하게 해 주었다. 얼큰하게 먹고 싶은 날이면 깍두기 국물을 곁들여 먹곤 하였다. 이 또한 아버지를 따라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늘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치고 먼저 나가계셨다. 부담스럽게 차에 시동까지 걸어놓고 말이다. 이럴 거면 굳이 왜 일찍 잠을 깨워 그것도 차를 끌고 가까운 거리를 나와서 외식을 하는 것인가. 이 더운 여름에 땀까지 삐질삐질 흘러가며 설렁탕을.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식사를 마치고 차에 타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평온하고 나른한 기분을 느꼈다.
"집 가서 한숨 더 자."
어머니는 졸린 나를 알아채고 다정한 말을 해주셨고, 돌아오는 차에서는 항상 알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가끔 서울대입구 역을 가게 되면 그때 그 설렁탕집을 지나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부모님, 형과 함께 설렁탕을 먹던 주말이 생각나곤 한다. 먹기 싫어도 막상 먹으면 참 맛있었던 설렁탕. 속이 뜨끈하고 든든했던 설렁탕. 여름에 땀을 흘리며 속으로는 이해가 안 되던 설렁탕 루틴. 취향과 관계없이 후추가 뿌려졌던 설렁탕. 지금은 후추가 내 취향이 되었다. 어느새 내 입맛은 아버지, 어머니의 입맛을 닮아있고 추억의 맛을 그리워하며 산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던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가족의 온기를 지키셨던 것이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의 아버지는 설렁탕 한 그릇을 다 드시지 못한다. 추억을 얻은 대신 세월의 무상함도 얻었다. 부모님의 흰머리와 굽은 등을 보는 것은 늘 가슴이 아프다. 야윈 다리도 그러하다. 추억이 더 깊어지기 전에,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돌아봐야 한다.
아직도 여름이면 설렁탕이 생각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