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가 와서 차가 많이 막히네요. 사무실에 조금 늦게 도착할 예정이니 먼저 회의를 부탁드립니다"
해외 고객사와의 화상 미팅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갔다. 정신없이 회사소개서, 제품 브로셔를 화면에 띄우고 있는데 팀장님이 늦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혼자 회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제 입사 한 달째, 일주일에 두세 번씩 화상회의가 있다. 회의를 할 때마다 매번 두렵고 긴장이 되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까? 어느 날, 출근을 하면서 그 원인을 들여다보기로 작정했다.
회사 건물을 향해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니?"
그러자 하나둘씩 그 이유들이 떠올랐다.
첫째, 아직 업계에서 쓰는 용어와 제품에 익숙하지 않다. 혹시나 고객에게 무시를 당할까 봐 두려웠다.
둘째, 업무가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르기 때문에 바보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결국 고객에게 무시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미팅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보며 답해보았다.
1. 질문: 고객에게 무시를 당하고 바보처럼 보이면 어떨 것 같아?
답변: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2. 질문: 그들이 정말 대놓고 나를 무시하고 바보처럼 생각할까?
답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놓고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3. 질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변: 회사 제품과 용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계속 부딪혀가며 공부하고 스스로 실력을 쌓는 수밖에.
막연히 두렵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니 답이 보였다.
이미 답을 알면서도 들여다보기 싫어했던 나도 보였다.
화상 미팅룸에 로그인을 했다. 고객사 측에 팀장님이 잠깐 늦을 거라고 전달했다. 그쪽에서는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회의에 새로 참가하는 직원들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팀장님이 오시기 전까지 왠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는데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다.
문득 혼자 회의를 진행해도 괜찮다고 느낄 찰나, 회의실 문이 열리고 팀장님이 들어오셨다.
두렵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실제 마주하며 아무 일도 아닌 경우가 참 많다.
나 혼자 두려움에 매몰되어 에너지를 소비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경우도 많다. 별일이 아닐걸 알면서도 미리
불안해야 덜 두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그럴 때마다 두려움 대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가? 왜 두려운가?
두려운 감정 대신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과정 속에 어쩌면 해답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 감정을 글로 쏟아내는 글쓰기야 말로 두려움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회의는 두렵고 싫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피하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