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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19. 2021

나도 재택근무라는 걸 해보았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 몇 군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날은 몇 명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재택근무?" 갑자기 귀가 솔깃했다. 


출근을 안 하고 집에서 근무하는 기분은 어떨까?







나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책상을 샀다. 홈오피스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하얀색으로 골랐다. 유튜브에서 이쁘게 꾸민 홈오피스 영상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날이 실제로 오다니, 괜히 설레었다.

 


도착한 책상은 받아보니 훨씬 이뻤다. 조립을 하고 벽 한쪽에 붙여놓으니 나만의 공간이 재탄생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며칠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오전 7시였다.


보통 이 시간이면 시계를 보며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를 속으로 외치며 이불속에서 뒹구는데 출근시간 열 시까지 아직도 세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빨리 안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바로 몸이 일어나 졌다.


아침을 먹고 티브이를 볼까, 했지만 남은 이 시간을 왠지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었다.


"산책이나 해볼까?"


퇴근길 강변이 생각났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아침산책을 하러 가다니, 괜히 기분이 짜릿했다.


안 하던 스트레칭을 오랜만에 하고 걷다 보니 땀이 살짝 났다.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샤워를 개운하게 하고 열 시 십분 전, 사내 시스템에 로그인을 했다.


드디어 나의 첫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얼마 후, 사내 커뮤니케이션 망에서 이것저것 확인을 요청하는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확인을 바로 안 해주면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최대한 빨리 회신을 하려고 했다.  메일도 주기적으로 계속 발송하면서 ", 일하고 있어요"를 알렸다.



정신없이 오전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괜히 혼자 기분을 내고 싶어서  근처 햄버거 매장에 가서 치킨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혼자 여행하다 낯선 곳에서 밥을 먹을 때 느꼈던 설렘이 느껴지는 건 왜인지.



점심을 다 먹고 다시 내 공간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또 기분을 내고 싶어서 2,000원짜리 빅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눈은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살짝 졸음도 밀려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내 방에 혼자 있었다. 갑자기 옆에 있는 매트리스가 눈에 아른거렸다.



핸드폰과 노트북 볼륨을 최대로 켜놓고 바닥에 깔려있는 매트리스에 철퍼덕 누웠다.


눈이 스르륵 감겼다. 이대로 계속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람이 울리면 눈을 떠야지 했는데 몇 분이 지나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설마 내가 볼륨을 꺼놓은 건 아닐까? 알람을 못 들었나? 불안한 마음에 다시 확인을 해보았다. 

볼륨은 여전히 최대로 되어 있었고 연락 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누운 지 몇 분도 안되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전에 비해 오후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일을 하다가 좀 지치면 창문을 열고 방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매트리스에 다시 누웠다.  누운 지 5분도 안되어 몸은 다시 책상 앞으로 왔지만 이 잠깐의 휴식은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후 7시, 드디어 퇴근시간이 왔다.  7시 10분까지 기다렸다가 퇴근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업무는 8시까지 이어졌다.



재택근무를 하며 제일 좋았던 점은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무실에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위를 신경을 쓰느라 더 피곤했다. 


집에서 일하니 내가 원하는 대로 휴식을 취하며, 내 컨디션을 살피며 일을 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퇴근시간이 지나도 일을 하게 되었다.



업무를 다 마치고 드디어 노트북을 껐다. 


그제야 하루 종일 일했던 하얀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커피를 마시다 흘린 자국,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노트와 펜,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휴지 조작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재택근무를 해보니 출근시간이 여유롭고 업무에 훨씬 집중을 할 수 있기도 했다. 다만 수시로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과 번거로움도 존재했다.



그러는 와중에 회사로부터 당분간 재택근무가 없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기분이 씁쓸했지만 다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출근 전 아침산책이라니, 원할 때 쉴 수 있다니,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다음 재택근무 때는 점심으로 뭘 먹을까, 벌써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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