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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01. 2021

매월 말, 30일에 월세를 냅니다


퇴근길이었다.


딱 봐도 직장인처럼 보이는 어떤 분이 하얀색 비닐봉지를 들고 급히 내 앞을 지나갔다.


뭐지? 하고 보니  oo 치킨이라고 적혀 있었다.


표정이 어찌나 설레 보이는지, 발걸음은 어찌나 빠르던지.


순간,  집 앞 근처에서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바비큐 치킨집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양념으로 한 마리 포장해 주세요"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5월 30일, 집주인에게 두 번째 월세를 입금했다.


자동이체를 해도 되지만 일부러 월말에 직접 입금을 하는 수고를 하기로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대신, 은행 앱을 켜고 이체를 직접 하기로 했다. 손가락 끝의 움직임으로나마 한 달에 지출되는 숫자를 기억하고 싶었다.


숫자와 0을 여러 개 입력하니 이번 달 생활비는 이만큼만 써야지, 라는 현실 자각을 하게 된다.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요구르트를 삭제해버렸다. 유제품을 줄이는 게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저 멀리 치우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이 회사를 떠나면 돈은 어떻게 다시 벌지?"   


"앞으로 어디에 가서 살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1년 동안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드디어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되었다.


계획에 없었던 독립이었지만 혼자 나와서 살아보니 좋은 점들도 많았다.


일단 집에 오면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일 크다.


1년 동안 쉬지 않았다면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독립이 딱 필요한 시기에 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혼자 살기에 너무 크지도, 너무 작아서 답답하지 않은 이곳이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모아야지, 늙어서 집 걱정은 최대한 안 하며 살아야지, 하면서

내 집 마련 준비를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게 살짝 후회되었다.


그리고 그 꿈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투자를 하라고 하던데, 최근에 시작한 주식을 어떻게 더 굴려야 하나, 부동산 관련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드리며 얼마를 모르려면 한 달에 얼마 큼까지만 써야 한다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랬던 나의 원대한 계획은 금요일 퇴근길, 치킨 한 마리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빨리 티브이 앞에 앉아 혼자 편하게 치킨을 뜯고 싶었다. 게다가 내일은 출근할 걱정도 없었다.


포장된 치킨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데 얼마나 설레던지.








알 수 없는 미래에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을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자 치킨을 뜯는 이런 설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비록 월세지만 이 집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최대한 많이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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