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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07. 2021

혼자 차려먹는 한 끼의 즐거움

독립, 그리고 혼밥


분명히 마트 매대에는 "삼겹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아는 삼겹살 모양이 아니었다.


왜 이게 삼겹살이지? 이런 모양의 삼겹살도 있었나? 의심스러웠지만 얼마 전부터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냥 사기로 했다.


삼겹살을 싸 먹을 쌈채소도 사고 과자도 몇 봉지 샀다.


집에 미리 사둔 쌈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직원에게 이거 삼겹살 맞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 하기로 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싶었다.


계산이 다 된 음식들을 재빠르게 가방에 담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생각을 하니 왜 이렇게 설레던지. 게다가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고 쇼핑한 것들을 하나둘씩 가방에서 꺼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올리려고 삼겹살을 씌운 랩을 벗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격이 적힌 스티커에는 "목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방금 사온 고기를 다시 쳐다봤다. 역시나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삼겹살이 아니었다.  







나 혼자 먹으려고  내 돈 주고 고기를 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부모님과 같이 살 때도 자주 혼자 마트에 갔었다. 주로 구입했던 건 파스타 소스, 파스타면 등 간단하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육류코너를 지나칠 때, 선뜻 고기를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곳의 선홍색 불빛과 가까이 다가가면 느껴지는 차가운 온도가 싫었다.  시뻘건 고기를 내가 직접 사는 일은 절대 없었다.










목살이 바싹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흐르는 물에 쌈채소를 씻고 냉장고에서 쌈장을 꺼냈다.

냉동해 둔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숟가락과 젓가락도 챙겼다.



고기가 다 익었나?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집어 보니 내가 좋아할 만큼의 정도로 알맞게 구워져 있었다.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탁자로 가져왔다. 얼마 전에 갔던 전시회장에서 받은 두꺼운 책자 위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한상 가득 혼밥 점심이 드디어 차려졌다.


창문 밖으로 갑자기 날씨가 어둑어둑 해더니 갑자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켰다. 유쾌하고 재밌는 무언가가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아하는 예능을 하고 있었다. 채널을 여기로 고정했다. 그리고 잘 구워진 목살을 쌈에 싸서 한입 먹었다.


배가 고팠던지 한 접시 가득했던 목살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비록 원했던 삼겹살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목살을 사 와서 다행이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다른 고기에 비해 목살을 자주 구워 먹었는데 그래서 더 익숙한 맛이었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내 방에서 홀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보내는 이 주말 오후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이 곳에서, 이 집에서 더 많은 것들이 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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