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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20. 2021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와 마주친다는 것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보통 때와는 달리 바람이 선선했다.


평소와는 달리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빵집 앞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큰 창문 너머로 직원이 방금 나온 빵을 매대에 진열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까지는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들어가 볼까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들어가 보았다.


빵을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갓 나온 빵을 구경하고 싶었고, 신선한 빵들에 둘러싸여 있고 싶었다.


빵을 사려고 들어온 척하며 들어가 진열된 빵들을 슬쩍 둘러보았다. 혹시나 먹고 싶은 빵이 있나 찾아봤지만 그다지 먹고 싶은 건 없었다.


매장 안을 순식간에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빵을 먹지도, 사지도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환기가 되었다.


이곳으로 출근하면서 빵집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오늘은 상사가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상사가 다른 직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 드디어 가시는구나.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금방 나갈 줄 알았던 상사는 하루가, 이틀이 지나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적막한 공기만 감돌았다.  직원들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듣기로는 회사와 대화를 하는 중이라고 했고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설마 안 나가고 계속 버티는 걸까?



머릿속에 온갖 추측만 왔다 갔다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서 그분과 마주칠까 봐 일부러 화물칸을 탔다.








해외업체와 화상회의가 있어서 일찍 출근하는 날이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상사가 이미 지하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었는데 그분이 매우 낮은 톤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매우 짧게 인사를 받았다.


그 굵고 낮은 톤에는 나 지금 인사할 기분 아니야, 나 지금 별로 말 할기분 아니거든, 이라는 무언의 언짢음과 화남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고 상사와 나, 단 둘만 남게 되었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빨리 엘리베이터가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기만을 속으로 바랬다.


그 뒤로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와 마주칠까 봐 항상 화물용 엘리베이터만 탔다.


아침부터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상사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 칠 일이 없어졌다.


사무실에서는 직원들과의 대화가 자유롭게 오가기 시작했다.


상사가 짐을 챙겨 떠나자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바로 그 자리로 옮겼다.


상사가 앉아있던 자리는 사람이 드나드는 문과 멀고 창가 쪽이라서 일에 집중하기 제일 좋은 곳이었다.


직원은 신이 나서 책상을 닦고 본인 컴퓨터를 재배치했다. 그리고 옮긴 자리의 창가 쪽 뷰가 너무 좋다며 계속 감탄을 했다.



다음 주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아침 출근길에 빵집에 들려 빵을 사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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