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Sep 14. 2021

9월 11일 뉴욕의 아침은 유난히 맑았는데



리모컨으로 케이블티브이 채널을 돌리고 돌리다 윗자리 번호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다 미국 CNN 채널에서 멈췄다. 


방송에는 9/11 테러 추모 20주년 행사가 곧 열릴예정이라고 했다. 


낯익은 뉴욕 거리가 보였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모리얼 파크의 모습도 보였다. 


방송에서 보이는 뉴욕의 가을 하늘은 여전히 맑고 화창했다. 


그리고 내 기억도 20년 전 뉴욕의 아침으로 돌아갔다. 






아침 수업에 늦을까 봐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지인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며 아는 분의 집에서 잠시 거주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연기가 자욱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였다. 


불이 났나? 하고 잠시 화면을 보니 CNN 뉴스에 긴급속보가 뜨고 있었다.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충돌했다고 했다.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와 기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멘트를 계속 반복했다. 비행기 운항시스템이 고장 나서 사고가 난 건지, 이렇게 화창하고 맑은 날에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사고가 났나 보네, 방송을 잠시보다 벌떡 일어났다. 학교에 빨리 가야 했다. 


수업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뭔가 어수선했다.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학교의 모든 수업이 취소가 되었으니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맨해튼에 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했다고 했다. 


뉴욕에 테러가 발생했다고 했다.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려고 간 메인스트리트는 평소보다 사람들로 훨씬 북적였다. 


모든 게 혼잡하고 어수선했다.  


이리저리 사람들 틈에 끼여 있으니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기다리던 버스가 금방 와서 얼른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하늘만은 유난히도 맑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집에 가자마자 티브이 앞에 앉았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봤다. 


그리고 비행기가 한대가 더 날아와서 쌍둥이 빌딩의 다른 건물과 충돌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이 화면에서 계속 나왔고 영상을 지켜보던 뉴스 앵커가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외치는 것도 여러 번 들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비행기 한대가 정말 다른 빌딩을 향해 직진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꼭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얼마나 지났을까? 곧이어 건물이 차례대로 붕괴가 되었고 그 모습이 화면에 전송되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생긴 먼지로 뒤덮인 사람들과 다친 사람들의 절규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방관들이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나르는 모습, 건물에서 피신한 사람들의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방송에서 보였다. 난장판이 된 사고지역에 가족을 찾아 울부짖으며 헤매는 사람들로 점점 가득 찼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척이나 심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뉴욕은 나에게 낯선 도시였다. 이런 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을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였다. 







20주년 추모행사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나와 목숨을 잃은 분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화면 속에 비친 뉴욕의 말고 화창한 하늘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곧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으며 동생을 기리는, 이제는 중년이 된 어느 여자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화면 밖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되었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울컥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9/11 테러 이후 5년간 여러 감정의 굴곡을 겼으며 지냈던 그곳은 어느새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 도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20년 전 그때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이곳 9월의 하늘이 20년 전 뉴욕의 하늘과 너무 닮아 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재킷 한벌에 설레게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