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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Sep 18. 2021

제3세계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에콰도르? 거기서 얼마나 살았어요?  어떻게 가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나를 소개할 때 에콰도르에서, 미국에서도 살았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했다.


부모님이 혹시 외교관이세요? 아님 해외에서 사업을 하셨어요? 부모님 직업이 왜 알고 싶은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아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런 것들이 궁금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이제야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내가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왔다고 하니 어떤 이들은 갑작스러운 호감을 드러내며 "특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처음 에콰도르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당시 길에서 동양인을 볼일은 거의 없었다. 길을 걷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현지인들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했다.  


중국? 아니면 일본? 대부분 동양인들을 보면 중국인이라고 생각했고 옷을 좀 세련되게 차려입으면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꼬레아 (한국)이라고 말했다. 아직 스페인어도 서툴렀고 에콰도르라는 나라 자체가 낯선 곳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그게 참 서러웠다. 우리나라도 빨리 세계 속에서 국격을 향상해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그런 걱정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물론 그때에 비하면 몰라보게 상황이 달라졌지만.








에콰도르에서 5년을 살고 미국에 갔을 때, 그러니까 어느새 나는 에콰도르에 살다 온 한국사람이 되어있었다.



한국인인데 에콰도르에서 살았다고 하니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했다.


에콰도르는 왜 가게 된 거예요? 얼마나 살았어요?


와! 그럼 스페인어도 할 줄 아세요?


사람들은 이미 나를 열정적인 남미 교포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미국에는 에콰도르에 있을 때보다 동양인들이 훨씬 많았다. 에콰도르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살았었는데 미국에 있는 동양인들은 다들 자신감이 넘치고 자유분방해 보였다. 동양인도 저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얼핏 하기도 했다.  



오랜 해외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귀국했을 때 끊임없이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누가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어보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음.. 그러니까 저는 에콰도르에서 살았고 또 미국에서도 몇 년 살았어요...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에콰도르가 어디예요? 거기까지는 왜 간 거예요?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TCK란?   
                                                                                                                              Third Culture Kid의 줄임말이며 제3 문화 혹은 제3세계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성장기 동안 2개 이상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을 뜻한다.

부모의 나라 (제1 문화) 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체류하고 있는 국가 (제2 문화) 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지만 제1 문화와 제2문화 양쪽 모두를 받아들여 만들어진, 제3의 문화 속에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출처: 나무 위키




TCK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에콰도르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닐 때부터였다.


그 학교는 오래전 에콰도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세워진 작은 학교였다. 시간이 갈수록 에콰도르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미국 커리큘럼을 따르는 국제학교로 커지게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 직업 때문에  에콰도르에서 성장기 시절을 보낸 자녀들을 일컬어 TCK라고 불렀다.  


미국 친구들 중에는 미국보다 에콰도르가 더 편하고 집처럼 느껴진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겉모습은 미국 사람인데 미국 음식보다 에콰도르 음식을 더 좋아했다. 방학 때 미국에 가면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겉보기에는 미국 사람이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사업가도 외교관도 아니었다. 당시 해외에는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으셨고 우리 가족 중 외국에 제일 처음 갔던 사람은 나였다.


10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직장에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어느새 나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TCK 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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