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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10. 2021

아프가니스탄 친구와 함께 갔던 그곳


뉴스에서 아프가니스탄 소식을 들었을 때 히잡을 쓰고 있던 소피아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소피아를 만난 건 대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수학 시간이었는지 인류학 시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수학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 기억이 틀릴지도 모른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요즘 참 많다. 


뉴욕으로 유학을 가서 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뉴욕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그 학교에 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이 많았다. 학교 캠퍼스에는 머리에 작은 모자를 쓴 유대인,  히잡을 쓴 무슬림 학생, 아시아계, 흑인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조를 짜서 해야 하는 수업시간이었다. 그때 소피아를 처음 만났다.  일자로 정렬되어 있던 책상이 흐트러지며 바로 옆에 있던 소피아와 한 조가 되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히잡을 쓴 소피아 얼굴을 보자마자 긴 눈썹에 맑고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눈이 어쩜 저렇게 이쁠 수 있지? 속으로 생각했다. 


수업시간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인사를 하고 몇 마디를 나눈 게 다였는데 어느새 소피아가 참 편안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조용한 성격이 맞았던 걸까? 우리는 그 이후 친해지게 되었다. 



소피아를 생각하면 히잡을 쓴 모습보다 Old Navy (미국 캐주얼 옷 브랜드)에서 산 것 같은 짧은 회색 코트에 청바지, 그리고 하얀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떠오른다.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아마도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왔겠구나,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나는 한국에서 살다가 에콰도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피아는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자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자 소피아가 맞다며 웃었다. 소피아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소피아는 내가 왜 에콰도르까지 갔는지 궁금해했다. 







학교 수업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소피아가 이슬람 동아리 모임을 하는 곳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소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소피아에게 이슬람 종교에 대해 많이 물어왔는데 그래서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구경만 하고 가면 된다고 해서 흔쾌히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학교 건물의 한 문 앞에 도착했다.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가자 히잡을 쓴, 학교에서 많이 본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그 방은 작은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했다. 어떤 학생은 알라신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소피아랑 나는 방 한구석에 앉았다. 



그 방에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어떤 학생은 내가 여기 왜 온 건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소피아가 계속 옆에 있어줘서였는지 나 역시 무슬림들 속에 섞여 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소피아는 이슬람 문화, 종교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 주었고, 그게 다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 나로서는 더없이 기뻤다. 소피아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도 한국식당에 소피아랑 가서 한국음식을 같이 먹으며 소개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왜 그렇게 못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소피아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계속 뉴욕에서 살고 있을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티브이에서 아프가니스탄이 나올 때마다 내가 소피아를 떠 올리듯 소피아도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소피아의 정확한 이름을 알았다면 구글 검색을 해서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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