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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여정기
해외에서 잠시 머물렀던 공간들
by
마리
Dec 1. 2021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을 보러 다니면서 문득 해외에서 살았던 여러 곳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독립을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해외에 나가 살면서 그때부터 정신적으로 "혼자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에 에콰도르에 갔을 때, 이민을 가서 살고 있던 친척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아니, 얹혀살기를 시작했다.
그곳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없지만 저녁은 가을 같은 날씨여서 꽤 쌀쌀했다. 한국과는 달리 난방시스템이 열악해서 저녁마다 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에콰도르에 갈 때 외할머니도 같이 갔는데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시기 전까지 방을 같이 썼다.
나무로 된 바닥의 구석에 주황색 꽃무늬 담요 위에서 할머니는 묵주기도를 하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머니의 기도소리가 들렸고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할머니가 묵주기도를 목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잠에 들곤 했다.
에콰도르에 간지 얼마 안 되었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있어서 어린 마음에 할머니의 기도소리는 마음에 큰 위로가 돼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이미 빨래를 다 해놓으셨었다.
뒷마당으로 가 할머니를 도와 빨랫줄에 열심히 빨래를 널어놓으면 같이 살던 개가 어느새 폴짝폴짝 점프를 해서 옷을 다 떨어뜨려놓았다. 그리고 옷을 물고 뜯었다. 화가 난 할머니는 긴 막대기를 들고 개를 잡으러 쫓아가시고 나는 떨어진 옷을 다시 주워서 빨랫줄에 걸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때 그 개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신 후 친척 가족과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2층짜리 주택이었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 그리고 방이 두 개가 있었고 2층에는 방이 3개였다. 나는 2층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방의 두면이 다 창문이어서 방에 한기가 가득했다.
저녁마다 얇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술술 들어왔다. 커튼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얇은 커튼 사이로 찬 공기가 들어왔고 밤이 되면 혹시라도 커튼 사이로 방안이 다 들여다보일까 봐 걱정이 들었다.
좀 더 두꺼운 커튼으로 바꿨더라면 그래도 바람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커튼만 바꿨어도 그렇게 춥지는 않았을 텐데.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동안 그곳에 살다가 친척이 운영하는 가게 근처로 다시 이사를 갔다.
에콰도르에는 집이 큰 경우 살림을 맡아서 해주는 헬퍼의 방이 따로 있었다. 이번에는 방 개수가 모자라서 헬퍼들이 사는 작은방이 내 방이 되어버렸다. 2층 집이었는데 1층은 너무 낡아서 2층에서 다 같이 지내야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헬퍼가 없었다.
그 방은 책상만 거의 들어갈 정도의 작은방이었다. 희한하게 방 한쪽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봉으로 샤워 커튼을 달고 안쪽에 옷을 보관했다. 책상 바로 앞에 매트리스를 깔으니 간신히 누울만했다.
그 방도 역시나 너무 추웠다.
밤마다 전기장판을 켰고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있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곳으로 이사를 간 후, 주말이면 한국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친척집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밤늦게까지 노래를 불러댔다. 목청이 떠나가는듯한 시끄러운 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집 가까이에 다른 집이 없어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도 없었다.
혼자 방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덮고 빨리 사람들이 가기만을 바라며 잠을 청했다. 사람들이 다 가고 난 후 거실에 나가면 술병과 먹다 남은 음식이 여기저기에 쓰레기처럼 널려있었다. 치우지도 않고 가버린 사람들이 참 야속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한국사람 몇 명이 오더니 대낮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자 방 안에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거실로 나가 노래방 기계의 전원을 보란 듯이 꺼버렸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사람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람들은 내쫓은 것 같았지만 속이 너무 시원했다.
그 이후로 대낮에 노래를 불러댔던 그들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집에 대해 쓰다 보니 예전에 살았던 곳들이 생각났고 잊고 있던 당시의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노래방 없는 집에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가족도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집이 아니기에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게 제일 힘들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온전한 내 공간을, 내 집을 갖고 싶다는 갈망이 내 무의식 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나만의 그 공간을 드디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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