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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an 15. 2022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


뉴욕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한국인이 운영하는 델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가게는 유태인이 많이 사는 부자동네였다.


캐셔 경험이 없어서 채용이 안될 줄 알았는데 주인이 좋게 봐줘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급은 7불이었다.


가게는 몇 평 남짓의 매우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찾는 건 다 있었다. 다양한 과일, 야채, 그리고 온갖 종류의 식료품 등 손님이 찾는 건 무조건 다 있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첫날, 주인아저씨가 과일코너에서 과일 이름과 가격을 알려주셨다. 세상에, 사과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그때 처음 알았다. 사과의 모양과 크기, 색깔에 따라 이름이 다 달랐다. 모든 과일과 야채의 가격과 영어이름을 외어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했다.






당시만 해도 바코드가 없어서 매장용 계산대에서 가격을 일일이 입력해야 했다. 안 그래도 산수에 약한 나는 손님이 물건을 가지고 계산대에 올 때마다, 특히 과일을 들고 올 때마다 긴장을 했다. 혹시라도 가격을 틀리게 계산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미국에서 거스름돈을 주는 방법은 좀 특이했다.


손님이 $25.50 짜리 물건을 사면서 나에게 $30불을 지불하면 나는 25센트짜리 2개를 건네며 $26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난 후 $4를 건네며 $30이라고 해주면 계산이 끝난다. 즉, 물건 값 $25.50에서 거스름돈 $4.50을 거꾸로 세가며 손님이 낸 $30을 확인을 시켜주는 것이다.


한국과 다른 셈법에 처음에는 너무 헷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잠시 쉬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햇빛이 비추는 따뜻한 주말 오후, 그 시간에 나도 가게 밖에서 쇼핑도 하고 자유롭게 걷고 싶었다.


주말 이틀을 가게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수업이 끝나면 잠깐 사무실로 와주세요"


제출했던 과제를 돌려받았는데 "D"라는 점수가 있었고 교수님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당시 영미문학 기초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수님은 은발의 나이가 많은 백인 할머니였다. 겉모습이 부시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부시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는데 항상 멋진 정장 차림으로 나타나셨다. 수업을 얼마나 재밌게 하시는지 항상 제일 첫 줄에 앉아 교수님의 강의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시험지를 들고 교수님 방에 찾아갔다. 교수님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수업시간에 항상 맨 앞에 집중을 해서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숙제도 제대로 안 해서 좀 충격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어쩔 줄 몰라하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그래서 좀 정신이 없어서 숙제를 못했다고 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세요"


 교수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미국 대학교에서는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시간을 들여 완성해야 하는 에세이도 자주 있었다. 주말은 일주일에 하지 못한 여러 과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면서 여러 수업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으면서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따끔하고 진심 어린 충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졸업도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이후 학교와 도서관을 다시 오가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뉴욕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때를 떠올릴때마다 창문 밖을 쳐다보며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 목적 없이 시내를 활보하는 게 큰 특권처럼 느껴질 때가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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