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Jul 02. 2022

라스베이거스 레드락캐년에서의 가장 짜릿했던 순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여기로 올라온 게 급 후회가 되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전혀 안 무서워 보였는데 직접 올라가니 느낌이 달랐다.








붉은색의 암석이 눈앞에 신비롭게 펼쳐져 있는 이곳, 레드락캐년에 드디어 도착을 했다.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표지판이 보여서 일단 차를 세웠다.


레드락 (Red Rock), 말 그대로 붉은 거대한 바위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트레킹 대신 입구 쪽만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저 멀리 관광객  몇 명이 바위 위에 올라가 사진을 또 찍고 있었다. 바위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인증사진에 또 욕심이 나서 나도 저 바위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리라, 내려가면서 마음을 먹었다.









레드락은 붉은 바위, 캐년은 협곡, 그러니까 말 그대로 붉은 바위로 된 협곡이다.



일본인 동료도 이 거대한 광경에 와, 감탄을 하며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슬리퍼만 신고도 아래 방향으로 잘 내려가는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나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혹시나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선글라스를 가져오길 천만다행이었다.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눈이 너무 부셨다. 건조한 사막 기운 때문에 습기가 없어서 땀은 안 났지만 태양의 열기는 대단했다.


혹시 이 열기 때문에 모래가 붉게 변한 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추측도 해보았다.







가까이서 본 붉은 바위는 정말 부드러운 모래언덕의 모습이었다. 손바닥으로 바위를 만져보니 표면은 거칠었다.  


바위 아래쪽 틈새로 가니 그 크기가 얼마나 웅장한지 혹시라도 이 바위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나는 바로 깔려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찔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모래언덕이 바위로 변했을까.


수천 년, 수만 년의 시간 동안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금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공원이지만 이 전에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들도 살 지 않았을까. 문득 쥐라기 공원에서 본 목이 길고 몸이 거대한 공룡들이 이곳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초록색 식물들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들도 오랜 시간 동안 이곳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견뎌내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거겠지.


보이는 모든 것들이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관광객이 바위 위에서 드디어 내려가자 얼른 일본인 동료에게 내 핸드폰을 건넸다.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줄래?" 그가 바로 오케이라고 대답을 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바위가 별로 안 커 보였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엉거주춤하며 거의 엎드려 걷다시피 하며 붉은 바위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일단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기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두 다리를 딛고 서야 하는데 너무 아찔했다.


일단 서 있을 공간이 너무 좁아서 까딱하다가는 미끄러져서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본인 동료에게 빨리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오래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몇 초 서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일본인 동료가 날 향해 핸드폰 카메라를 비추고 있었다.


아니 아까 그 관광객은 까르르 웃으면서 한참이나 이 위에 있던데 나는 왜 이렇게 무서운 거지?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며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휴, 내가 저길 왜 올라간다고 했을까.


다행히도 일본인 동료가 몇 초 동안 서 있던 내 모습을 순간을 잘 포착해 주었다.







바위 위에서 내려오자 정신이 혼미했다. 숨을 좀 고르려고 붉은 바위틈에서 앉을만한 평편한 곳을 찾아 털썩 앉았다.



어쩌다 보니 일본인 동료와 나는 서로 반대편 쪽을 바라보며 앉아있게 되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껴서 그나마 햇빛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일본인 동료는 눈이 많이 부실 것 같았다. 혹시라도 그가 일어날 채비를 하면 나도 같이 일어나야지,라고 생각을 했다.







숨을 고르며 앞을 쳐다보니 레드락캐년의 웅장함이 다신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 관광객들이 많이 없어서 주변은 참 조용했다.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거나 다른 바위 위에 올라가 있는 몇 명의 인원밖에는 없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이 거대한 붉은 암석들이 신비로웠다.


문득 이 세상에는 내가 안 가본 곳들이, 모르고 지내는 곳들이 참 많구나. 내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어쩌다 레드락캐년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번 출장이 아니었다면 내 평생 레드락캐년이라는 곳이 있는지도 몰랐을 텐데, 일부러 보러 올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불빛의 라스베이거스 시내보다 이곳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곳은 충분히 시간이 있을 때, 여유가 있을 때, 돈이 많은 어느 훗날에나 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



내가 뭐라고 이 머나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까지 와서 레드락캐년이라는 곳에 있는 거지?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걸까...









문득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아무것에도 의욕을 가질 수 없던 한국에서의 최근 일상이 떠올랐다.



어쩌면 신께서 삶에 아직도 무궁무진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주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계속 떠돌았다.



강한 햇빛의 열기를 온몸에 그대로 받으며 두 팔이 점점 뜨거웠다. 바위에 걸터앉은 엉덩이도 후끈후끈했다.  하지만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혹시나 싶어 일본인 동료가 있는 곳을 쳐다보니 그도 어떤 상념에 젖은 듯 멍하니 붉은 바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우리 둘은 한참 동안 레드락 케년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각자의 순간에 집중했다.


그 고요했던 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스베이거스 레드락캐년으로 향하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