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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에서의 일주일
라스베이거스 레드락캐년까지는 누가 오는 걸까
by
마리
Jul 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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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락캐년을 감상하며 앉아있다가 더 이상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 힘들어서 차 안으로 피신을 했다.
일본인 동료가 에어컨을 빵빵하게 켰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렌터카 안은 금방 시원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창문을 밑으로 쭉 내렸다.
갑자기 무언가가 차 옆을 스윽, 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빨간색 스포츠 티와 바지를 입은 남자 한 명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색 헬멧을 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흡사 전문 산악 바이커였다.
와 대단하다! 이 열기에 자전거를 타다니.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
전지훈련을 온 전문 산악인 아니면 주말에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라스베이거스 주민?
아니면 일부러 레드락캐년 드라이브 코스로 자전거를 타러 온 여행객?
문득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눈에 담으며 페달을 밟는 기분은 차 안에서 편히 앉아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집에서 티브이를 보며 편하게 쉴 수 도 있고,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쇼핑을 할 수 도 있을 텐데 몸을 움직이며 자전거를 페달을 열심히 밟는 뒷모습이, 검게 그을려진 있는 그의 피부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어떤 이유가 되었던 몸을 움직이는 취미를 가진 이 사람의 뒷모습은 참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SUV 차 뒤 트렁크 문을 활짝 연채로 한 남자가 차 뒤쪽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주말여행을 온 가족이었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바닥에 앉은 채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바로 앞에는 어린 딸이 요구르트가 잔뜩 묻은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입 주변이 요구르트 범벅이었지만 엄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딸을 무심히 바라보는 아빠와 입에 요구르트를 잔뜩 묻었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엄마를 보니 왠지 모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인상을 찌푸리며 요구르트에 집중하고 있는 아기의 모습은 너무 앙증맞았다.
이 가족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어쩌다 레드락캐년까지 오게 되었을까?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차 없이는 여행하기가 힘든데 이 가족이 탄 SUV 라면 어디 든 멀리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가족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옆으로는 거대한 SUV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런 차를 운전해서 미국 대륙을 횡단하면 어떨까.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운전을 못한다.
레드락캐년을 충분히 둘러본 것 같아서 라스베이거스 시내로 다시 가자고 했다.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는데 이 허허벌판에 갑자기 앞서 가던 차들이 멈추었다.
무슨 일이지? 사고가 났나?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어보니 저 멀리 말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도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저기서 말이 갑자기 왜 나오지?
말이 도로 밖으로 완전히 나오자 앞서가던 차들이 다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보니 말이 아니라 당나귀였다.
너무 신기해서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당나귀가 우리 차 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창문에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당근이라도 있다면 주고 싶었는데 차 안에는 먹을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먹을 걸 줘도 되는 건가, 미국법에 걸리는 게 아닌가.
당나귀는 너무 익숙한 듯 차 안을 둘러보더니 계속 우리를 응시했다. 우리가 먹이도 안 주고 가만히 있자 에이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주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차 밖으로 뺐다.
어슬렁어슬렁 다시 당나귀는 뒤쪽에 서 있는 다른 차가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잠깐이었지만 레드락캐년에서 살아있는 동물과 마주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광활한 자연에서 사람의 간섭 없이 살고 있는 이 당나귀의 모습에서도 미국 특유의 어떤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본 당나귀의 털은 깔끔했고 눈동자는 맑고 또렷했다.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듯한 모습에 웃음이 빵 하고 터졌다.
"와, 미국에서 미국 팝을 들으니 진짜로 미국에 온 기분인데? 하하하"
일본인 동료가 신나 하며 갑자기 흥얼댔다.
다시 시내로 나가기 전, 일본인 동료가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운전을 좀 해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이지"라고 대답을 했다.
혹시라도 그가 레드락캐년을 지겨워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는데 그도 이곳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마침 렌터카에는 60, 70, 80, 90년대의 미국 팝이 내장되어 있어서 우리는 교대로 음악을 바꿔가며 들으며 신나게 질주했다.
"너도 운전을 배우는 게 어때? 그래야 나중에 혹시라도 미국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기면 네가 원하는 곳에 직접 운전해서 갈 수 있지"
내가 드라이브를 만끽해하자 그가 진심 어린 말투로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다시 미국에 또 올 기회가 있을까? 미국 여행을 하러 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운전을 배우기가 정말 싫었는데 레드락캐년 드라이브코스라면 당장이라도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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