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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12. 2022

뚜벅이 여행자가 방콕에서 헤맨 이유

캐리어 가방을 질질 끌며 걷다가 카카오 택시에 접속을 했다. 하지만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택시가 잡힐만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택시 승강장이 보였다.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시 택시 승강장을 향해 걸었다. 다행히 가방 아래에 달린 바퀴는 보도블록 위를 잘도 굴렀다.  가방을 끌고 걷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우리나라 보도블록이 이렇게 잘 되어 있었다니. 시선이 계속 아래로 향했다. 







방콕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선선한 공기가 확 느껴졌다. 


아, 가을이구나. 


덥고 습한 방콕의 날씨를 드디어 벗어나게 되어 기뻤다. 








"여유롭게 길을 걸으면서 맛있는 거 사 먹기"


하지만 방콕 여행은 내가 생각하고 꿈꿨던 여행과는 너무 달랐다. 


맛있는 거 사 먹기는 어느 정도 가능했으나 일단 방콕은 도보여행자를 위한 곳이 전혀 아니었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건물 옆에 바싹 붙어 최대한 옆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피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건물 앞쪽으로 보도블록이 있다 해도 부서진 곳이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민원을 넣어서 어떻게든 길을 메꿨을 텐데 방콕에서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하며 걸어야 했다.


방콕의 지상철, BTS에서 내리면 쇼핑몰 하고 바로 연결되어 있는 역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밑으로 내려갔는데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헛웃음을 지었다. 밑에서 헤맬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유일하게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곳은 쇼핑몰 내부였다. 대부분 한국보다 규모가 훨씬 컸고 럭셔리 매장들도 많았다. 쇼핑몰 마트는 전 세계 식품을 모아둔 종합 저장고 같았다. 한국 제품은 물론 아시아, 중동, 유럽, 미국 상품 등 없는 게 없었다. 아니 이 많은 제품의 재고정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BTS를 타고 창밖을 내다볼 때면 빽빽한 건물에 숨이 꽉 막혔다. 공원, 광장 등 빈 공간은 도무지 내 눈에 안 들어왔다. 아마도 우리가 주로 머물렀던 곳이 방콕 도시 한복판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보여서 숨이 꽉 막혔다. 여기저기서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호텔이나 쇼핑센터로 채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방콕은 빈 땅을 가만두지 않았다. 


뚜벅이 여행자가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지 못하자 시간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사람들이 걷는 보도블록이 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갑고 감격스럽던지. 덥고 꿉꿉한 날씨 대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가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방콕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왔더니 한국에서의 나의 일상이 새롭게 보였다.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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