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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14. 2022

의식의 흐름대로 쓴 지난 주말의 일기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안에 패딩조끼까지 입었더니 다행히 날씨는 견딜만했다. 교보문고가 문을 여는 9시 반에 정확히 정문에 도착해서 바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아침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고 이 코너 저 코너를 기웃거리며 책들을 구경했다.



최근에는 이상하게 책이 잘 안 읽혔다.


이 얘기가 그 얘기인 것 같았고 다들 하는 말들은 똑같고 새로울 게 없고 뻔한 내용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뭔가 내 시선을 끌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마술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대를 왔다 갔다 했지만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경제서적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고 베스트셀러 코너의 책도 썩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게 한참 동안 서점을 돌다가 부동산 관련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뭔가에 홀려 갑가지 그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사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집에 사두고 안 읽은 부동 산책이 몇 권이나 있는데 속으로 이 책은 집에 있는 책과는 다른 내용이라며 애써 자기 합리화를 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책을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는 어떤 불안감이 덮쳤다.


그러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에 휩싸여서 15,000원을 결재했다.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나와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큰 소리가 펑펑 울리고 있었다.


이날, 광화문에는 집회가 있었다. 도로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디서 구했는지가 의심스러운 대형 스크린에서는 알아듣고 싶지도 않은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너무 나빴다. 집회가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대규모 인원에 기가 찼다.


내가 좋아하는 광장을 빼앗긴 것 같았고 그곳을 평화롭게 걷고 싶던 바람은 하는 수 없이 저 멀리 날려버려야 했다.






광장 뒤쪽에 있는 카페로 간신히 피신을 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방금 산 부동산책을  다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장 읽다가 그만 읽고 싶어졌다. 언제까지 이런 책을 읽으며 불안한 심리를 다스려야 하는 걸까.


방콕에서 신나게 돌아다녔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먹고 놀고했던 자유로웠던 순간들이. 방콕 사람들도 부동산 공부를 할까? 책을 끝내고 싶은 의욕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내용을 붙잡고 한참을 있다가 배가 고파서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도 집회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전쟁터 같은 그곳을 빠져나와 먹고 싶은 샐러드 가게로 달려갔다.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밖에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깥 온도는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광장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광장과 멀어질수록 거친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 움직이자 조금씩 저 소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종로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종각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서 또 책 구경을 했다. 읽고 싶은 책도, 사고 싶은 책도 없어서 멍하니 돌아다니다 우연히 어느 매장에서 차를 우려먹는 차 거름망을 하나를 발견해서 샀다.


계속 서서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팠다. 집에 가야겠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에 나오자 또 마음이 바뀌었다.


을지로 쪽을 더 돌아봐야겠다, 하고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날씨가 너무 쌀쌀했다. 몸도 피곤했고 더 돌아다미면 나중에 집에 갈 때 힘들 것 같았다.






하는 수없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몸은 기진맥진했고 갑자기 마음이 암울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를 자책하는 여러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생각 없이 돈을 쓰고 있다는 것, 돈을 벌고 있어도 앞으로가 걱정된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실컷 여행하고 돌아왔더니, 괜찮아 질줄 알았던 마음이 더 바닥을 쳤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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